지난 주 토요일, 10월 9일은 한글날이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은 유네스코에서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으며,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놀라운 표현력과 간결한 입력 방식때문에 세계의 언어학자들에게 주목받는 자랑스러운 언어입니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언어의 활용에서 벗어나 의상이나 영상 속의 디자인에 사용되는 등 다양한 미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도 합니다.




[ 이상봉 디자이너와 김연아의 만남, 그리고 호남 향우회인 브리트니? (출처:네이버) ]




게임업계에서도 한글, 혹은 한글화는 해묵은 논쟁의 화두입니다. 과거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놀라운 수준의 한글화를 선보이기 전까지, 한국에서 개발되는 온라인 게임들조차 롱소드, 에너지볼트, 텔레포트 등 음차 위주의 용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외산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한글화 정책은 여러모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한글화에 대해서 찬성하는 분만큼, 반대하는 게이머분들도 많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스타크래프트 2의 한글화 역시 한동안 여러 게시판에서 게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으니까요. 특히 다른 게임에 비해 전작인 스타크래프트 1편은 음차 형태의 용어를 10년 넘게 사용했기 때문에 해병과 병영보다 마린과 배럭이 낫다는 유저들의 불만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 '마린을 돌려다오 Vs 해병이 낫다' 끝나지 않는 논쟁 ]




온라인게임에 등장하는 용어의 번역과 음차의 선택은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취향의 문제에 가깝기 때문에 끝나지 않는 논쟁꺼리입니다. 그러나 취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소중한 한글을 올바른 방법으로 사용하자는 취지에는 모든 게이머들이 공감하지 않을까요?

'깎퉽끓'같은 단어는 한글의 모음과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읽을 수도 있지만 의미가 있는 단어는 아닙니다. 단순히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올바른 한글의 사용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처럼 번역과 음차의 문제 이전에 올바르게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지의 여부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로 564돌을 맞이한 10월 9일 한글날을 기념하며 올해 오픈했거나 화제가 되었던 여러 온라인 게임들 중 일부를 선정하여 한글 용어의 표현 및 사용에 대하여 조사해보았습니다.



▷ 2010년 초의 화제 게임, MORPG 3인방!

가장 먼저 살펴볼 온라인 게임은 작년 말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모았으며 최근에는 콘텐츠의 업데이트를 통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MORPG 3인방! 마비노기 영웅전과 C9, 드래곤네스트입니다.


* 마비노기 영웅전 (★★★★☆)

마비노기 영웅전의 세계관은 흔히 판타지로 불리는 세계관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음차의 용어가 많은 편입니다. 특히 서양에서 유래된 무기의 이름은 고유명사에 가깝기 때문에 음차와 번역을 함께 사용하는 형태가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무기나 방어구의 이름에는 롱소드, 숏소드, 재킷, 메일 등의 음차를 사용하고 있지만 상위 아이템으로 올라갈수록 스토리와 연관되어 있는 NPC의 이름이 담긴 검이나 평정, 고요, 마족 지휘관 제식검처럼 한글의 표현이 사용되는 아이템들이 증가합니다.

스킬에도 서서 버티기나 완력 훈련같은 한글 표현이 등장하지만, 반대로 비슷한 형태임에도 경갑 숙련과 롱소드 마스터리가 함께 등장하는 등 한글 표현과 음차 용어들이 상황에 따라 혼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용어들이 음차와 번역 중 하나를 선택해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실제 받아들이는 게이머들의 이질감은 크지 않으며, 용어 사용에 대한 거부감 역시 없는 편입니다.






* C9 (★★★☆☆)

C9의 경우 아이템과 스킬의 이름에는 음차와 번역을 혼용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마비노기 영웅전에 비해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용어들이 있습니다.

아이템 중에는 스터디드 갑옷같이 혼란을 줄 수 있는 용어들이 함께 사용되는 경우도 있으며, 한글인 가죽과 음차인 레더가 비슷하게 사용되는 등 게임 내 용어의 일관성이 부족합니다.

스킬 부분에서는 사자의 외침이나 기상 공격같은 스킬도 있지만, 백엔드 쓰러스트같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음차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C9에서 이미 사용되는 다른 스킬이나 아이템과 비교하여 볼 때 순화된 표현이 가능한데도 음차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 아쉽습니다.





* 드래곤네스트 (★★★☆☆)

마비노기 영웅전과 C9이 음차와 번역을 혼용했다면, 최근 중국에서 좋은 성적을 이어가고 있는 드래곤네스트는 음차쪽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게임 내에 등장하는 아이템들의 수식어는 불굴의 명상가나 파괴의 합금 등 한글 표현이지만, 핵심적인 아이템의 분류나 스킬명 등은 모두 음차를 선택해 혼돈을 줄이고 있습니다.

헬멧, 티아라, 일렉트릭 데토네이션, 프리징 필드 등 게임 내에서 핵심적인 용어들과 스킬이 일관적으로 음차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에 갈레로처럼 일부 용어가 생소하긴 해도 드래곤네스트를 즐기는 게이머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쉬운 편이고 게이머들의 거부감 역시 덜한 편입니다.






▷ 나날이 발전하는 외산 게임, 중국발 MMORPG 2종

중국과 대만 등 아시아권에서 이미 뛰어난 성적을 보여준 뒤 한국에 퍼블리싱되는 중국발 MMORPG 2종, 진 온라인과 황제 온라인입니다. 특히 황제 온라인은 현금 거래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워 오픈베타 초기부터 많은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애초 세계관의 유래가 서양인 판타지와 달리 진 온라인과 황제 온라인같이 동양의 무협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들은, 같은 한자 문화권이기 때문에 상당 부분 한글 표현과 일치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 등 한자 문화권에서 제작된 게임이라고 해도, 로컬라이제이션에 대한 고민없이 한글화해버릴 경우 오히려 한국에서는 쓰이지 않는 표현들이 그대로 넘어와 혼동을 주는 경우도 발생하곤 합니다.


* 진 온라인 (★☆☆☆☆)

진 온라인은 배경이 무협이기 때문에 상당수의 용어들은 검과 도 등 한국에서도 사용하는 용어와 일치합니다. 스킬 역시 추혼탈명이나 검술 숙련, 사자후 등 무협을 읽어본 게이머라면 익숙한 용어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그러나 같은 한자 표현이라고 해도 단순히 음차를 해놓은 수준에서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판타지 배경의 MMORPG들보다 이질적인 용어들이 다수 사용되고 있어 순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갑옷을 뜻하는 한자 표현인 개(鎧)나 신발을 뜻하는 화(靴) 등의 용어들이 그대로 한글로 쓰여 무슨 아이템인지 혼돈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트 아머는 판금 갑옷으로 번역하지 않고 음차만으로도 대다수의 게이머들이 이해할 수 있지만, 열일지겁개나 예천형광화가 어느 부위의 아이템인지 이름만 듣고 바로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스킬의 경우 초상비나 천상제같이 일반적인 무협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 많아 아이템의 이름보다는 생소함이 덜하지만, 상위 아이템과 스킬로 갈수록 복잡해지는 한자 표현을 그대로 음차해놓은 경우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좀 더 한글에 걸맞는 변화가 필요할 듯 합니다.




[ 벽옥령롱 세트의 벽옥영롱상, 쉽게 이해하기 힘든 아이템 명 ]




* 황제 온라인 (★☆☆☆☆)

황제 온라인 역시 무협 기반의 세계관을 선택하고 있으며, 진 온라인과 마찬가지로 갑이나 완, 모, 포 등 갑옷의 부위를 가리키는 한자 용어가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일부 악세사리의 경우에는 망토나 목걸이, 반지 등으로 번역된 표현이 있지만, 역시 대다수의 아이템들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녹의광무령, 전장신영슬 등 한글로 음차만 되어 있을 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의 화평이라는 단어가 한국으로 넘어오면 평화가 됩니다. 같은 한자권의 문화를 사용하고 있으니 어림짐작으로 뜻은 통할수 있을지 몰라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판타지 배경의 MMORPG가 주력인 상황에서 무협에 익숙하지 못한 게이머들에게는 오히려 이런 용어들이 난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은 무협 배경의 외산 게임을 로컬라이제이션하는 퍼블리셔가 반드시 고려해야할 부분입니다.







▷ 의외의 복병! 좋은 성적을 보여준 세븐소울즈와 아르고


MMORPG 시장이 치열한 경쟁의 레드 오션이라고 하지만, 꾸준히 좋은 성적을 보여주는 게임들이 등장합니다. 특히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대작들의 사이에서 의외의 성적을 거두는 복병들이 매년 등장하는데, 올해에는 세븐소울즈와 아르고가 좋은 성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아르고와 세븐소울즈는 한국에서 개발되었기 때문에 완성도와 별개로 게임 내에 등장하는 용어와 표현들이 한국의 게이머들이라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 세븐소울즈 (★★★★☆)

세계관이 무협인데다 한국에서 제작된 게임이기 때문에 용어의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게이머들이 가장 쉽고 익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형태라고 할 수 있으며, 용어들의 표현 역시 일관적입니다.

세븐소울즈의 아이템이나 스킬 등에 사용되는 대다수의 용어는 빛나는 봉황의 단검이나 포악한 물뱀의 비늘 신발처럼 한국에 살고 있는 게이머라면 문제없이 받아들일 수 있으며, 아이템들의 이름 역시 어색한 표현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무협게임인 만큼 월룡 일격이나 회풍무류, 완갑 등 생소한 표현과 단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중국에서 제작된 게임들과 달리 한국에 익숙한 한자들이 많아 게임을 즐기는데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 아르고 (★★★★☆)

세계관이 SF에 가깝기 때문에 판타지 배경의 용어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국에서 제작된 게임이기 때문에 어색하거나 생소한 용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아이템에서 장갑과 글로브, 신발과 슈즈가 함께 사용되는 등 혼용이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아이템들은 장갑, 신발, 훈련복, 장갑 등 한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슈즈나 피스톨 등의 음차 용어가 쓰이는 경우는 소수이기 때문에 일관성을 해칠 정도는 아닙니다.

아르고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스킬 역시 마음의 수련이나 생존 본능, 신속한 발포 강화 등 직업에 따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들이 대부분입니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여러 게임들의 용어를 조사하고,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될만한 게임들을 선정하면서 온라인 게임에서 사용되는 각종 표현들이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위에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조사했던 다른 게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직은 짧고 간결한 표현이 가능한 한자 위주의 설명이나 용어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을 초기부터 겪어온 경험을 되살려보면 판타지나 무협의 용어를 그대로 음차하여 사용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 등장하는 국산 온라인 게임들은 좀 더 '한국스러운' 용어들을 많이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문자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합니다. 한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표현력과 과학적인 구조를 함께 갖춘, 한글이라는 아름다운 그릇이 있습니다. 너무 풍부한 표현력때문에 금칙어 선정같은 부분에서는 곤란을 겪기도 하지만, 단점이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장점이 많습니다.

무조건 한글로 번역된 용어들만 사용해야 된다는 편협된 주장은 문제가 있지만, 가능하다면 좀 더 한국적인 용어들이 표현된 게임을 즐기고 싶습니다. 한글날은 올해로 564번째의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온라인 게임에서 사용되는 한글 용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