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는 재미있다, 두 번째부터는 글쎄
로그라이트는 반복적인 죽음 사이에서 캐릭터가 점차 강해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첫 회에서는 단순히 칼을 휘두를 뿐이지만, 죽음을 반복하면서 캐릭터를 육성하고 다양한 아이템을 획득한다면 하늘을 날아다니고 메테오를 숨 쉬듯 날리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일반적인 RPG와 다른 점은 죽었을 경우 모든 아이템을 잃고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점과 육성이 랜덤으로 이뤄지는 점이다.
'댄디 에이스'는 장르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이 들어갔지만, 로그라이트의 기초에서 아주 충실하게 만든 게임이다. 죽음과 육성의 반복, 랜덤으로 등장하는 아이템까지. 분명 익숙한 로그라이트의 향기가 나고 시스템도 괜찮게 느껴지지만 무언가 게임을 하다 보면 2% 아쉬운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왜 그런 걸까?
게임명 : 댄디 에이스(Dandy Ace) | 개발사 : 매드 미믹 |
---|
관련 링크: '댄디 에이스' 오픈크리틱 페이지
천 개가 넘는 카드 조합, 내 맘대로 맞추는 전투 스타일
게임은 주인공 댄디 에이스가 저주받은 거울에서 탈출하기 위한 분투를 다루고 있다.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를 거울에 가둔 악당의 정체와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지를 간단한 컷 신을 통해 보여준다. 아무 이유 없이 일단 탈출하고 보라는 막무가내식 전개가 아닌 나름의 스토리텔링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작부터 탈출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전달해주는 편이다.
'댄디 에이스'는 탑다운 슈터 방식으로 비슷한 장르에서 '하데스'와 '엔터 더 건전'을 생각나게 한다. 정해진 길을 따라가며, 랜덤으로 등장하는 아이템을 얻어 강해지는 방식이다. 다만, '무기'를 들고 싸우는 기존의 게임들과 달리 우리의 주인공은 '카드 마술'로 싸운다는 점이 이 게임의 차별 요소로 꼽힌다.
보통 로그라이트 게임은 어떤 무기를 사용하냐에 따라 전투 스타일에 변화를 준다. 찌르기에 특화된 창, 베기에 특화된 검 등 무기의 형태에 맞춰 공격 스타일이 고정되며, 주인공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다양한 장신구를 장착해 나만의 빌드를 만들어간다. 예를 들어 한 방 데미지가 강력한 대검을 주웠다면 더욱 강력한 한방을 위해 데미지 증가 버프 장신구를 장착하거나 혹은 느린 공격 속도를 보완해줄 공속 증가 버프 장신구를 장착하면서 플레이어의 취향에 따라 캐릭터의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댄디 에이스는 마술사란 컨셉에 맞춰 카드가 무기의 역할을 맡는다. 주인공이 사용하는 카드는 크게 3종류로 구분되는데 짧은 쿨타임으로 주력기로 쓰이는 빨간색 카드, 대시와 텔레포트 등 유틸성을 갖춘 파란색 카드, 마지막으로 적들에게 CC기를 거는 노란색 카드다. 플레이어는 색깔에 상관없이 총 8장의 카드를 소지할 수 있으며, 8장의 카드를 조합해 나만의 전투 스타일을 만들 수 있다.
즉, 따지고 보면 8개의 무기를 장착해서 싸운다는 소리로 들릴 수 있는데 복잡할 거 하나도 없다. 8장의 무기 중 실제 전투에 쓰이는 것은 4장이고 나머지 4장은 메인 카드를 보조해주는 역할이다. 보조 카드로 쓸 때 해당 카드의 핵심 효과가 메인 카드에 스며든다고 보면 된다. 가령 화살을 쏘는 카드에 매혹을 거는 카드를 붙인다면 화살에 매혹 속성이 부여되는 방식이다.
어떤 카드를 들고 싸울지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몫이기 때문에 원한다면 메인으로 빨간색 카드만 4장 들어도 되고 혹은 노란색 카드 4장을 들어 상태 이상 효과만 가지고 적들과 싸울 수 있다. 단, 강력한 성능의 카드일수록 쿨타임이 긴 데다 슈팅 요소도 있으므로 파란색 카드 1장 정도는 사용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웠다.
게임 내에는 정말 다양한 카드가 존재하며, 4개의 주력 카드, 4개의 보조 카드를 조합한다면 약 천 개의 빌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어떤 카드는 로켓을 발사하고 어떤 카드는 화살을 쏘며, 주먹질에 유령 소환하고 쇠사슬을 감는 등 꽤 다양한 공격 스타일의 카드들이 많으니 본인 입맛에 맞춰 전투 스타일을 만들어나가는 재미가 있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게임이 아니라 카드 마술을 사용해 전투를 펼친다는 발상은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검, 창, 도끼 등의 장병기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색다른 공격 방식도 그렇고 모든 카드 마술의 공격 방식이 다르다는 점 역시 매력적인 요소로 비쳤다. 그런데 게임을 어느 정도 하다 보니...
색다름은 순간뿐, 변하지 않는 모습과 뻔한 빌드
로그라이트 장르를 설계하는 데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일까? 몬스터의 공격 패턴을 어렵게 만드는 것? 다양한 스테이지를 구성하는 것? 강력한 보스를 만드는 것? 앞서 말한 모든 요소도 중요하지만 진짜 주의해야 할 점은 바로 빌드의 단조로움이다. 수십, 수백 가지의 빌드가 있어도 막상 재미있는 빌드는 한정되어 있다거나 혹은 새로운 빌드를 찾는 게 전혀 흥미롭지 않을 때, 로그라이트 장르의 핵심 재미는 사라진다.
댄디 에이스의 카드 시스템은 다양한 빌드를 제공한다. 8장의 카드 조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빌드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 아쉬운 점은 바로 게임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다양한 빌드가 전혀 다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A와 B를 합쳐 X라는 색다른 즐거움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A와 B를 합쳐 정말 딱 AB를 만들어냈달까.
또한, 다양한 공격 방식의 카드가 많지만 실제로 써먹을 만한 카드는 몇 종류가 안 돼서 후반 스테이지를 안정적으로 깨기 위해선 효율이 좋은 카드만 쓰게 된다는 점도 단조롭다고 느끼는데 한몫한다.
성공적인 로그라이트 게임으로 거듭난 하데스를 떠올려보자. 하데스는 던전에 입장하기 전 단 한가지의 무기만 들고 갈 수 있으며, 던전 탐험을 통해 다양한 신들의 가호를 받아서 점차 강력한 빌드를 만들어갈 수 있다.
카드마다 다양한 공격 스타일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게임 진행 중에 계속 바꿀 수 있는 댄디 에이스와 달리 하데스는 오직 한가지의 무기만 들고 싸운다. 그런데 하데스는 왜 단조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걸까. 이유는 신들의 가호가 전투 방식 자체를 크게 바꿀 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칼을 휘두를 뿐이지만, 신들의 가호가 쌓일수록 칼을 휘두르면 번개가 치고 파도가 넘실거린다.
또 다른 로그라이트 게임인 스컬은 어떠한가. 시작은 작고 초라한 해골에 불과하지만 진행하면서 강력한 해골 머리를 습득하고 아티팩트를 모아 기상천외한 전투 스타일을 펼칠 수 있다. 두 게임 모두 캐릭터의 빌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약했던 캐릭터가 처음과 다른 공격 스타일을 보여주고 강력해진다는 느낌을 실시간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댄디 에이스는 처음과 끝의 플레이 방식이 거의 흡사하다. 1레벨의 화살 발사 카드와 5레벨의 화살 발사 카드의 차이점은 데미지의 증가밖에 없다. 높은 레벨의 카드를 장착한다고 해서 플레이 스타일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오직 카드의 변화는 서브 카드의 장착에 따라 달라지는데 효과가 1개밖에 적용되지 않으며, 이마저도 1.5초 스턴, 매혹과 접촉 시 폭발 발생 등의 한정적인 효과밖에 주지 못하니 여타 다른 게임처럼 극적인 변화를 느껴볼 수 없다.
앞서 말했듯 높은 레벨의 카드라고 해봤자 데미지 증가밖에 없으며, 서브 카드의 강화는 처음부터 가능하니 스테이지의 후반까지 간다고 해서 뭔가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 카드를 날리는 기술을 처음에 썼다면 후반에도 똑같이 카드를 날리는 모습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카드 마술을 계속 조합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어땠을까. 처음에는 카드를 던질 뿐이지만, 나중에는 카드를 360도로 던지면서 번개 효과와 콰광하고 내리쳤다면 지금 느낀 점과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드는 게임이다. 8장의 카드를 조합해 다양한 공격 스타일을 직접 만든다는 시스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4장 모두 대시 카드로 맞추고 보조 카드로 폭발 효과를 더해 플래시 컨셉의 빌드를 만들거나 혹은 로켓만 잔뜩 들어서 사방 팔방에 로켓을 날려대는 재미도 있었다.
스테이지마다 몬스터의 종류가 조금씩 달라지는 점과 근거리, 중거리 타입을 적절하게 배치해 전투의 긴박감과 난이도를 조절한 점도 칭찬할 만하다. 특히, 보스 스테이지의 경우 굉장히 다채로운 패턴을 갖추고 있었으며, 데미지와 HP도 많아서 나름대로 공략하는 맛이 있었다.
단조로운 전투 방식 때문에 아쉽다고 많이 언급했지만, 그렇다고 게임을 못할 만큼 재미없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첫 플레이 이후부터 노말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기까지는 꽤 재미있게 즐겼다고 생각한다. 다만, 노말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뒤 어려운 난이도를 도전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을 뿐이다.
수천 가지의 정형화된 빌드보다 수십 가지의 색다른 빌드에 더 눈이 가는 법이다. 새로운 아이템을 얻는 즐거움은 단순히 데미지 증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플레이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기대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요즘에는 정식 출시 이후에도 꾸준한 콘텐츠 업데이트를 통해 게임 플레이에 변화를 주는 게임들이 다수 존재한다. 탄탄한 기초를 갖춘 만큼 앞으로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을 채워줄 콘텐츠를 쌓아간다면 분명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로그라이트 게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