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벤은 WHO의 '게임 장애(Gaming Disorder)' 공식 질병 목록 등재 시도에 대한 이장주 박사님의 기고문을 소개합니다. 해당 기고문은 등재 시도가 얼마나 부당한지 총 4회에 걸쳐 근거를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장주 박사님은 현재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사회문화심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시대, 기술을 넘어선 사람의 행복'을 테마로 게임과 e스포츠를 비롯해 디지털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게임 장애 질병화란 광기의 질주를 멈추라!
[1부] 게임 장애,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
- 게이머의 자기결정권: 게이머는 가축이 아니다. (예정)
- 게임 장애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불러온다. (예정)
- 게임 장애, 질병화를 저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예정)


정신장애(mental disorder), 정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나는 최근에 보도된 WHO의 ‘게임 장애(Gaming Disorder)’ 공식 질병목록 등재를 하겠다는 사람들의 정신을 의심했다. 정말 정신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런 발상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미쳐 돌아가고 있다. 게임을 좋아하는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로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 글을 쓴다. 나의 글이 게임 장애 질병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을 멈춰세우기에는 역부족일수 있다.  하지만 상식을 가진 이들이 이런 논란에 동참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만 막을수만 있어도 내 몫은 충분히 감당한 것이라 여기며 4회에 걸쳐 그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럴듯함이 상식으로 둔갑하다

게임중독으로 폐쇄 정신병동에 입원한 환자가 불을 지르고 나가서 게임을 하더라는 뉴스를 접했다. 대부분 ‘게임중독자’는 안돼! 라는 쯧쯧거림이 포털이나 게임 전문 웹진에서 공통으로 나왔다. 게임중독자가 불을 지르고 탈출할 만큼 그렇게 심각하다는 인식에서 이리라.

그런데 이상하다. 어떤 중독증상도 ‘불을 지르는 행위’가 특성으로 나타나는 것은 없다. 다시 말하면 불을 지르는 것은 중독 증상과 무관한 행위다. 정신병동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에 꾀를 낸다는 것이 위험천만한 일로 커졌다고 나는 추론한다.

그럼 그 병동에 왜 왔는지가 궁금해진다. 적어도 현재 의료체계상 게임중독으로 폐쇄 병동에 수용될 수 없다. 게임중독이 주 증상이 아니라, 다른 심각한 정신장애로 입원했다는 뜻이다. 그가 문제를 일으켰다면, 게임중독이 아니라 ‘어떤 병명으로 입원한 사람이 불을 내어, 자동으로 작동한 출입문을 통해 탈출한 후 PC방에서 발견되었다’라는 워딩이 정확하며, 상식에도 부합한다. 참고로 그 불로 인명사고가 나지는 않았으며, 사고 후 없어진 사람을 수상히 여겨 찾아냈다고 한다. 사람이 다친 것도, 재산 피해가 크게 난 것도 아닌 이 사건이 크게 부각된 것이 나는 더 수상하다.

많은 사람은 ‘게임중독자’가 병원을 탈출하려고 불을 질렀다는 것에 아무런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이해는 된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은 그럴듯한 이유가 생기면 더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는 보편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 퍼킨스(Perkins)는 이런 현상을 ‘말이 되네 중단 규칙(‘make sense’ stopping rule)’이라고 불렀다.

▲ 출처: MBC

하지만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낙인’이 될 수 있는 진단을 내리는 사람이 이런 엉성한 논리체계로 진단을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게임 장애와 관련된 보도에서 흔히 보는 댓글들은 이렇다. “에이, 세계적인 기구에서 그렇게 엉성하게 처리하겠어?”, “다 철저한 검증으로 추진하겠지~”

불과 백 년 전까지 질병 치료를 위해 피를 뽑는 행위인 ‘사혈법(bloodletting)’*이 유행하였다. 전 세계 최고 의학연구 기관 중 하나인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설립에 공헌한 오슬러(William Osler, 1849~1919)도 “사혈은 폐렴 치료에 좋은 효과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너무 사용을 적게 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까지 비과학적 인습이 뿌리 뽑히지 않았다고 믿는다. ‘게임 장애’를 질병 목록화하자는 움직임에서 비과학적 광기를 생생하게 느낀다.

* (폐렴 뿐 아니다. 여드름, 천식, 암, 콜레라, 혼수상태, 경련, 당뇨병, 간질, 소화 불량, 뇌졸중, 파상풍 결핵 등등 거의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데 사혈을 적용했다. 거의 모든 질병 치료에 피를 뽑았던 행위가 20세기 초반까지 세계 최고 의료기관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근대 과학이 정립된 후에도 이런 비과학적 인습이 여전히 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비과학적 인습은 인공지능이 활약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증거가 ‘게임 장애’다.)




게임 장애, 21세기판 사혈법이다.

2016년 게임 장애를 반대하는 26인 학자들의 공개토론문의 핵심은 ‘과학적 근거 부재’다. (논문 원문)

게임 장애가 ‘있다’와 ‘없다’가 대결하면 누가 증명을 해야 할까? ‘있다’가 증명해야 한다. ‘없다’는 증명할 수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게임 장애’는 누구나 이해할만한 ‘존재의 증거’를 내놓는 대신 ‘게임 장애가 근거 없음’ 즉 ‘부재’를 증명해야 하는 이상한 논리구조에 빠져있다.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게임 장애가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맞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있다’는 근거를 검토해본 결과 나는 아래와 같은 3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1) 낮은 연구 신뢰성이다. WHO에서 근거로 내세우는 자료 중 핵심이 우리나라 게임중독 관련 연구들이다. 이것들의 특징은 대부분 자기보고식 연구다. 과장이나 불안정한 응답을 걸러내지 못한다. 우리나라 조사연구 중 대표적인 지표로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가 있다.

2017년 3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12만 명 초중고생 중 게임과몰입군은 0.7%에 해당한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효과와 긍정적 효과를 함께 나타내는 ‘과몰입 경계군’은 1.8%로 합계 2.5%의 응답자가 게임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이 결과는 국내외적으로 게임 장애와 관련된 중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게임행동종합진단척도’의 구조를 보면 그 허술함에 놀랄 것이다. 척도는 크게 ‘게임선용척도’와 ‘게임문제행동’ 척도가 한 벌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채점은 선용척도 7가지 요인(활력경험, 생활경험확장, 여가선용, 몰입경험, 자긍심경험, 통제력 경험, 사회적 지지망 유지 및 확장 등)과 문제적 게임이용 7개 요인(내성, 금단, 과도한 시간소비, 조절손상, 강박적 사용, 일상생활 무시, 부작용에도 계속 사용 등)을 비교하여 진단한다.

이는 우리나라 게임과몰입자의 수치를 공식적으로 측정하는 진단도구다. 위의 요인 점수 합계가 6점 이상인 요인이 3개 이상이면 문제게임이용군에 속한다. 단지 ‘위험군’이나 ‘경계군’이냐가 다를 뿐이다. 근데 내가 게임을 얼마나 하는지 상관없이 게임 시간을 왜 줄이고, 생각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안된다.


위에서 ‘경계군’ 1.8%는 선용경험도 3개 요인 이상이고, 문제적 게임이용도 3개 요인 이상으로 나온 이들이다. 예를 들면, ‘게임을 통해 여가를 즐겁게 보낸다’, ‘게임으로 인해 즐겁게 사는 에너지(활력)이 생긴다’에도 긍정적으로 답한 사람이 답한 문제 게임행동, ‘게임을 못하거나 갑자기 줄이게 되면 짜증 나고 화가 난다(금단)’,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으나 게임하는 것을 줄이지 못했다(조절손상)’, ‘하루라도 게임을 하지 않고 지낸 적이 거의 없다(강박적 사용)’에도 긍정응답을 한 경우다. 이건 위험군이 아니라 너무 당연한 응답이다. 즐겁고 활력을 에너지원을 갑자기 못하게 하면 짜증 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런 즐거운 것을 왜 줄이려고 했을까?

이것을 성인 버전의 데이트 위험군 사례로 풀어보면 이렇다. 애인을 만나면 즐겁고, 활력이 든다. 그 사람과 데이트를 갑자기 줄이거나 못 만나게 하면 짜증 나고 화가 난다. 또 매일 만나는 것을 줄이려고 노력한다. 하루도 안 만난 적이 없다.

이런 행동에 모두 해당한다면 이게 문제가 되는가? 1.8%도 작은 수치지만 그조차도 문제가 있다는 해석에 동의할 수 없다. 0.7%에 해당하는 고위험군은 더욱더 문제다. ‘게임선용척도’ 6점 이상 요인이 3개 미만이고, 문제행동척도 6점 이상인 요인이 3개 이상일 때 진단된다. 문제행동척도는 게임이 해로운 것이고 줄여야 할 대상으로 가정하고 질문한다.

이것은 ‘마약, 알코올, 담배’라는 물질중독의 프레임을 그대로 답습한 결과다. 이미 게임은 물질중독과 다르게 ‘내성’과 ‘금단현상’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그리피스 등의 연구결과(Griffiths et al., 2016)가 있다. 쉽게 말해, 게임을 하다 중단한다고 담배를 끊었을 때처럼 손이 떨리고, 헛것이 들리고, 정신집중이 안 되는 혼미한 현상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게임이 강력한 금단현상이 있었다면 왜 그 수많은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하고, 수많은 게임사가 경영난을 겪겠는가 말이다. 결국 0.7%마저도 진짜 응답을 했다기보다는 허위 응답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다른 가능성은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매우 단기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일 수 있다. 웨인스테인(Weinstein, 논문) 팀은 19세~91세의 성인 미국 온라인게임 정기이용자패널 2316명을 대상으로 DSM-5의 '인터넷게임장애(IGD)의 진단 준거를 활용해 6개월간 추적 조사를 실시했다. 진단 준거 9가지 중 5가지 이상 해당했 때 IGD로 진단을 내리도록 미국정신의학회(APA)에서 설정한 기준이다.

연구 시작 전 1.49%의 대상자가 진단기준 5개 이상에 해당하였지만, 6개월 후 5개 이상의 진단기준을 유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단지 4개의 기준에 충족하는 사람이 3명이 있었을 뿐이다. 보통 6개월이란 기간은 정신장애를 진단하는 기준이다. 심지어 이번 WHO 게임 장애(GD) 진단기준은 12개월이다. 이 연구에 의하면, 미국 온라인게임 정기이용자 패널에서 게임중독장애(IGD)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게임 장애 기준의 절반을 적용해서도 말이다. 도대체 그 많다던 게임 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2) 게임이 뇌를 바꾼다는 논리다. 이것도 웃긴다. 뇌는 매우 가소성이 높다. 60세까지 뇌는 지속해서 변화한다. 당연히 게임을 하면 뇌가 바뀐다. 맞다. 그런데 악기연주를 해도 바뀌고 운전을 오래 해도 바뀐다.

게임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행위를 하면 그 부위를 담당하는 피질이 바뀐다. 그런데 나쁘게 바뀐단다. 그 근거로 마약을 흡입했을 때와 같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뇌의 영상은 사랑에 빠진 사람, 맛난 음식을 먹는 사람, 큰돈을 눈앞에 둔 사람과도 같다는 말은 쏙 빼놓는다. 뇌의 쾌감중추라는 것은 그 대상이 게임이냐, 음식이냐, 멋진 이성이냐, 큰돈이냐를 가리지 않고 동일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이 중 못 된 마약과 비교하는 것은 대표적인 1종 오류*다.

▲ 1종 오류와 2종 오류

*1종 오류(type 1 error)는 남자에게 임신이라고 진단하는 오류이고, 2종 오류(type 2 error)는 실제 임산부에게 임신이 아니라고 진단하는 오류로 설명할 수 있다. 약물중독 기준으로 게이머를 진단하면 1종 오류에 너무 쉽게 빠질 수 있다.

차라리 돈이 마약과 같으니 과도한 돈벌이는 사회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찬성하겠다. 분리 뇌 연구로 유명한 UC 산타바바라 심리학과 교수 가자니가(Gazzaniga)는 이런 설명을 한다. ‘자동차 부품을 아무리 연구해도 교통체증을 예측할 수 없다’. 정말 통쾌한 설명이다.

뇌를 아무리 연구해도 그 뇌를 가진 사람이 하는 행동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바퀴가 닳은 것을 보고 운전을 많이 했다고 추론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어디를 다녀왔는지는 전혀 알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바퀴를 보고 이 사람이 나쁜 곳에 다녀왔다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라 점쟁이이다. 뇌 사진으로 게임중독을 주장하는 이들이 어디에 속하겠는가??

▲ 자동차를 분해해서 아무리 자세하게 들여다 본들, 도로의 교통정체를 예상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 뇌의 각 부위를 철저하게 연구를 하면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


3) 개념적 불명확성이다. 사람과 침팬지는 98.6% 동일한 유전자 배열을 가지고 있다. 이런 미세한 차이가 사람은 동물원을 만들고, 침팬지는 그 동물원에 갇히는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 냈다. 비슷하다고 같은 부류로 묶는 것은 상식적으로 통할지 몰라도 과학적으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이런 오류들이 게임 장애 연구에서 많이 나타난다. 첫째, 국내 게임중독 연구들, 특히 청소년이나 보건 관련 연구들은 실제 게임으로 인해 부적응을 겪는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한 것들이 아니다.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게임중독척도를 적용한다. 그리곤 게임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라이트유저 혹은 비유저)과 비교한 게임을 많이 이용하는 게이머(헤비유저) 간의 차이를 마치 중독자의 특성인 양 결과로 제시하고 있다.

정상인이나 게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그 특성은 정도의 차이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걸 긍정적으로 봐야 할까, 부정적으로 봐야 할까?

미국 게임산업협회인 ESA(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은 올 초 WHO의 게임 장애 등재 발표 예정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며 아주 재미있는 근거를 들었다. 게임에 몰입하고 즐기는 걸 게임중독이라 해서 정신건강 질환으로 규정할 경우, 우울증이나 사회불안 장애처럼 정말로 관심을 가져야 할 질환들조차 게임 장애처럼 여기고 가볍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미국 게임산업협회의 반박 성명서다. 전 세계 온라인 게임의 본산인 우리나라 게임산업협회도 어떤 방식으로든 명확한 입장표명을 해야 함이 옳지 않을까?

두 번째는 공존 장애(Comorbidity)와 관련되는 문제다. 많은 임상연구에서 게임 장애는 혼자 나타나지 않는다. 다른 장애와 함께 나타난다. 이렇게 함께 나타나는 장애들을 공존 장애라고 한다. 충동조절장애, 불안장애 같은 유형이 대표적인 공존 장애다.

만일 게임 장애가 공식 질병 목록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존 장애들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고유한 특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특성이 있어야 게임 장애를 측정하고, 연구하여 치료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없다. 누구나 혹은 전문가라면 구분할 수 있는 게임 장애만의 특성 없이 명칭만 질병 목록에 들어간다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그런데도 WHO에서는 소수 게임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도와주는데 진단명 등재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도대체 그 실체가 뭐고, 어떤 방식으로 도와줄 수 있는지는 입을 닫고 있다.


게임 장애,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

난 게임과 관련해 십수년째 연구를 하는데, 순전히 게임으로 인해 문제가 되는 사례를 접해 본 적이 없다. 대체로 다른 정신장애와 공존하여 나타나는 경우거나, 나머지는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 부모자녀관계 문제가 핵심인 경우 였다.

관계의 문제는 주로 의외의 상황에서 터진다. 예를 들면, ‘숙제 했어 안했어?’, ‘이게 사람사는 방이야? 돼지 우리야?’ 이런 식이다. 정말 숙제나 청소가 핵심이 아닌거다. 쌓였던 문제가 숙제나 청소를 매개로 터져나온다. 안타깝게도 ‘게임’도 딱 이런 상황에 단골이다. ‘아이구 속터져! 너는 허구헌날 게임만 하니?’

대체로 가족이나 가까운 중요 인물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 이를 대치할 만한 것을 찾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인정과 사랑이 몸과 마음을 자라게 하는 중요한 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관계문제에서는 이런 중요한 성장요소가 결핍된다. 목이 마르면 물을 찾듯 결핍된 인정과 사랑을 쉽게 채울 수 있는 곳이 게임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가 게임때문이라니? 이건 본말 전도고, 책임회피다. 앞서 소개한 웨인스테인(Weinstein) 팀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분석했고, 연구자들은 직업이나 인간관계에서 채우지 못한 욕구를 게임을 통해 채웠다고 해석했다.

즉 게임이 중독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불행한 상황이 게임으로 대체된 것이다. 게임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자가치유기능(예: 배가 아프면 시키지 않아도 배를 손으로 문지른다)을 시사하는 다른 연구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게임이 ADHD치료효과가 있다는 연구, 우울증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는 연구가 대표적이다. 건강을 회복하게 위해 피를 보태주어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환자의 피를 뽑아내려 하고 있다. 게임장애라는 이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