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쾰른메쎄에서 진행되는 데브컴(Devcom) 이튿날에는 '배틀그라운드'의 주요 개발자들이 참석해 게임의 개발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이야기하는 좌담회가 진행됐다.

최근 판매량 800만 장 돌파, 스팀 최고 동시이용자 또한 70만 가까이 기록하는 등 전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배틀그라운드'인 만큼, 해당 좌담회에는 좌석이 모자라 양 옆 공간에 앉거나 뒤에 서서 강연을 들어야 할 정도로 인파가 모였다.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브렌든 그린(Brendan Greene) 블루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파벨 스몰루스키(Pawel Smolewski) 리드 애니메이터, 마렉 크라소우스키(Marek Krasowski) 프로그래머는 각자 담당했던 개발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게임을 개발하는 데 있어 커뮤니티의 피드백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발표를 맡은 세 명의 '배틀그라운드' 개발자들

본격적인 좌담회는 각 발표자들이 일련의 주제에 대해서 한 마디씩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먼저, 한국의 개발사인 블루홀과 일하게 된 점 및 블루홀의 개발 환경에 대해 파벨 리드 애니메이터는 "기본적으로 수평적 리더십이 존재, 각 파트를 담당하는 인원들은 언제든지 가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자신의 의견을 피치하는 편"이라며,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밝혔다.

마렉 프로그래머는 블루홀에 합류한 지 비교적으로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의 사례를 들며, 회사가 구성원이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많이 주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 블루홀에 입사했을 때, 프로그래머로서 역할 뿐 아니라 캐릭터 및 액션 애니메이션, 그리고 무기 밸런스 디자인 등 작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며, 개인적으로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브렌든 그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배틀그라운드'의 총괄인 김창한PD와 함께 작업하며 느낀 소감을 이야기했다. "김창한 PD는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라고 운을 뗀 그는 "그는 누군가 어떤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든, 일단 들어보고 게임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사람이다.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 브렌든 그린(Brendan Greene)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음 주제는 배틀그라운드의 거대한 커뮤니티로부터 받은 여러 가지 피드백을 실제 밸런싱에 어떻게 적용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 모드로 게임 개발을 시작했을때부터 커뮤니티의 피드백을 중시해왔던 브렌든 그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특히 지속적으로 서비스되는 멀티플레이 게임일수록 피드백을 통한 밸런싱이 중요하다"고 설명하며, 배틀그라운드의 밸런싱을 위해 커뮤니티 플레이어들과 인터뷰를 진행한 사례를 소개했다.

배틀그라운드가 알파테스트를 시작한 이후부터, 개발팀은 여러 차례 플레이어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다. '배틀그라운드'가 어떤 게임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또 비슷한 게임 중에 자신이 생각할 때 좋은 플레이 경험을 준 게임이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오갔으며, 이 과정에서 얻을 수 있었던 답변은 상당히 놀라웠던 것이었다.

마렉 프로그래머는 당시 인터뷰를 회상하며 "개발자로서 우리가 남들보다 폭넓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때로 플레이어들이 가진 아이디어는 개발자들의 애초 기획안에 수정을 가져올 정도로 강력하기도 하다"고 전했다.

▲ 마렉 크라소우스키(Marek Krasowski) 프로그래머

이렇듯 커뮤니티로부터 얻는 피드백은 완성도 높은 게임을 개발하는 데 큰 보탬이 되지만, 모든 경우를 플레이어들의 피드백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어 브렌든 그린 디렉터는 데이터에 기반한 밸런싱과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갔다.

"플레이어들은 개발자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게임에 투자하고, 이러한 플레이 경험을 통해 어떻게 하면 게임을 더 재밌고, 더 오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한다. 다만, '배틀그라운드'에서 이들이 한 판에 접할 수 있는 것은 게임 전체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밸런싱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이어 브렌든 그린 디렉터는 맵 전체적으로 배치되는 아이템 루팅 시스템을 데이터 기반 밸런싱의 사례로 들었다. 그가 아르마3의 모드를 개발할 때는 모든 루팅 아이템은 전 맵에서 랜덤하게 생성됐다. 하지만, 배틀그라운드에서는 보다 장소를 예측할 수 있으면서 매 게임마다 밸런스를 생각해야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루팅 밸런싱을 위해서는 상당한 수의 스프레드시트와, 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되는 데이터가 필요했다. 매 게임마다 단편적인 부분만을 경험하는 플레이어의 피드백보다 게임 서비스와 함께 축적되는 데이터를 밸런싱의 척도로 사용하겠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루팅 밸런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브렌든 그린 디렉터는 난수 발생(RNG) 시스템에 대한 밸런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생각할 대 좋은 RNG와 나쁜 RNG에 대한 정의를 설명하며, "보다 경쟁적인 건플레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RNG, 그리고 앞서 설명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루팅 밸런스, 매 게임마다 다르게 생성되는 블루 존과 레드 존 등은 좋은 RNG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마렉 프로그래머가 건플레이에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RNG로 '배틀그라운드'에 다양하게 적용되는 에임 모드를 사례로 들었다. 배틀그라운드에서 무기를 조준했을 때, 총알은 절대적으로 크로스헤어가 가리키고 있는 지점으로 날아가게 되지만, 반동의 경우는 RNG가 적용, 무기 별로 지정된 범위에 따라 매번 무작위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파벨 리드 애니메이터는 "이러한 부분적인 RNG 적용을 통해, 보다 경쟁적인 전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밸런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며, 게임 내 존재하는 총기의 밸런스 목표를 공유했다. '배틀그라운드'가 추구하는 총기 밸런스의 방향은, 장비 등급의 높낮이로 결정되는 밸런스가 아닌, 플레이어들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 밸런스다.

요컨대 각각의 장비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부분적인 RNG가 적용된 에임 모드를 통해 플레이어 간 능력의 차이를 둔다. 바로 이것이 배틀그라운드가 추구하는 무기 간 밸런스로, 파벨 리드 애니메이터는 "앞으로도 상황에 따라 적합한 무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밸런스를 맞춰나갈 예정"라며 설명을 마무리했다.


다음으로는 게임을 개발하면서 있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공유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 첫 번째 주자는 바로 '배틀그라운드'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근접 무기, '프라이팬'에 대한 것이었다.

프라이팬을 '행복한 실수'라고 설명한 마렉 프로그래머는, "많은 사람들이 프라이팬과 관련한 스토리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사실, 말하기 조금 쑥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방탄조끼, 방탄헬멧도 막지 못하는 총알을 튕겨내는 프라이팬이 등장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어느 날, 브렌든 그린 디렉터는 마렉 프로그래머에게 뜬금없이 "혹시 프라이팬이 총알이 튕기게 만들어볼 수 있겠냐"는 질문을 했고, 마렉 프로그래머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간단하게 총알을 튕겨내는 프라이팬을 게임에 넣었다.

문제는 그 이후, 마렉 프로그래머가 장난으로 프라이팬에 수정을 가했던 것을 깜박한 데 있었다. 때문에 이를 다시 원래대로 복구하지 않은 채 업데이트가 라이브되었고, 마렉 프로그래머는 스트리밍을 통해 '프라이팬'이 유명해지고 나서야 자신이 프라이팬을 수정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 이제 게임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버린 프라이팬

다음 에피소드는 '배틀그라운드'의 애니메이션을 개발하기 위해 모션 캡처를 사용했던 이야기다. 물론, 평범한 이야기는 아니다. 저 멀리 체코까지 가서 모션 캡처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 이야기는 파벨 리드 애니메이터가 설명을 맡았다.

체코까지 가서 모션캡처를 진행하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한국에서는 모션 캡처를 할 여건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파벨 리드 애니메이터는 "대부분 한국의 개발사들은 모션 캡처에 익숙하지 않아, 이곳에서 (모션 캡처)작업을 하는 것보다 전 직장이 있는 체코에서 하는 것이 편하리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애초에 모션 캡처로 애니메이션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파벨 애니메이터는 그 이유로 2달밖에 없었던 촉박한 개발 시간을 들었다. 2개월 안에 약 1,200개에 달하는 애니메이션을 일일이 만들기는 불가능했고, 때문에 모션 캡처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 파벨 스몰루스키(Pawel Smolewski) 리드 애니메이터

마지막으로 '배틀그라운드' 개발자들은 현재 가장 심혈을 기울여 작업하고 있는 담넘기 동작 애니메이션 (Vaulting)에 대한 이야기와, '열린 개발'이라는 자신들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끝으로 좌담회를 마무리했다.

지난 e3 기간 중 공개된 '담넘기 동작' 애니메이션은 애초 개발 일정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그저 개발자로서 게임을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는 '위시리스트' 정도에만 포함되어 있던 요소였다. 하지만, 플레이어들로부터 추가해 달라는 요청이 상당했고, 그 때문에 우선적으로 추가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브렌든 그린 디렉터의 설명이다.

보통 맵 상에 존재하는 오브젝트를 '넘어가는' 동작을 추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맵 상에 존재하는 오프젝트마다 마커를 찍고, 오브젝트의 크기 별로 동작을 추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계획이 없었던 '배틀그라운드'였기에 이미 맵 디자이너들은 신규 맵을 작업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며, 때문에 맵 전체에 마커를 찍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개발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담 넘기 애니메이션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새 방법은, 지형 스캔 시스템을 통해 플레이어가 넘을 수 있는 지형물을 사전에 체크하고, 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오브젝트들을 제외해 나가는 방향으로 동작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속도와 오브젝트와의 거리 등에 따라서도 다른 동작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담 넘기 애니메이션은 프로토타이핑에만 한 달 이상이 소요될 정도로 큰 작업이었다. 파벨 리드 애니메이터는 "최소한 30가지 이상의 새 애니메이션이 추가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플레이어는 버튼 하나를 누르거나 오래 누르는 것으로 편하게 동작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담 넘기 애니메이션은 '조만간' 만나볼 수 있을 예정

이어 브렌든 그린 디렉터는 "얼리액세스 단계가 배틀로얄과 같은 장르에 딱 알맞은 이유"라고 말하며 '열린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다.

열린 개발은 요컨대 개발 과정을 플레이어들과 지속적으로 공유하면서, 커뮤니티와 함께 게임을 완성시켜 나간다는 것이다. 파벨 리드 애니메이터는 이를 위해 매일같이 커뮤니티에서 가치 있는 의견을 찾는 직원이 존재할 정도라고 덧붙이며, "실제로 게임에 도움이 되는 의견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일" 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브렌든 그린 디렉터는 "사실, 담 넘기 동작을 커뮤니티에 선보이기가 두렵기도 하다. 이 요소의 등장으로 게임이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고, 심할 경우 게임 플레이 자체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며, "바로 이럴 때일수록 '열린 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