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진출자를 가리기 위한 조별 매치가 진행 중인 APEX에서 해외 초청팀인 엔비어스가 국내팀을 상대로 연승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4일에 마이티 스톰을 3:0으로 꺾은 엔비어스는 17일 컨박스 T6와의 경기에서도 '세계 최강'다운 실력을 뽐내며 3:1로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세계 1위 팀인 엔비어스이기에 그들의 선전이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프리미어급 중국 대회인 APAC 조별 매치에서 루나틱 하이가 세계 3위 로그를 잡은 전례가 있고, 지난 10일의 APEX 경기에서는 국내 아마추어팀 런어웨이가 리유나이티드를 압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최근 국내팀들이 해외 강팀을 상대로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기에 '어쩌면 엔비어스도?'라는 기대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경기 결과가 말해주듯 세계 최정상의 벽은 매우 높았습니다. 컨박스 T6가 세트 하나를 따내며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역설적으로 국내팀의 '한계점' 또한 여실히 드러내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엔비어스의 최근 경기를 되짚어 보면서 이들의 주요 전략과 강점, 그리고 국내팀의 패배 요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변화무쌍!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픽

APEX 해외 초청팀 중 가장 먼저 국내팀과 겨뤘던 리유나이티드는 10일에 런어웨이 팀을 만나 3:0으로 패배한 뒤, "공격적인 한국식 플레이에 당황했다."라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한국식 플레이'를 분석한 끝에 12일 콩두 판테라를 상대로 3:1 승리를 챙겼죠.

이어서 14일에는 엔비어스가 국내에서의 첫 경기를 치렀습니다. 상대는 한국 프로팀인 마이티 스톰. 앞서 리유나이티드가 예상치 못한 완패를 당했기 때문에 엔비어스 역시 첫 경기는 주춤하리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완벽히 현지 적응이 된 엔비어스가 무실 라운드로 완승을 해버린 겁니다.


◆ [점령전] '자힐' 메타 : HarryHook의 솔저 픽

마이티 스톰과의 1세트가 진행된 '네팔'에서는 평이한 픽으로 '피지컬' 싸움을 벌였지만, 2세트 '왕의 길' 수비에서는 루시우 대신 솔저를 픽하는 다소 특이한 조합을 선보였습니다. 소위 '자힐 메타'로 불리는 이 조합은 로드호그, 메이, 솔저, 아나, 라인하르트, 자리야로 구성되어 있으며, 탱커 둘을 제외한 나머지 딜러들이 회복기를 가졌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조합의 장점은 전장 유지력을 어느 정도 확보하면서도 솔저를 이용한 원거리 견제가 용이하다는 겁니다. 엔비어스는 수비 진영 2층 건물에 로드호그와 솔저를 배치한 뒤, 측면으로 접근하는 겐지와 트레이서를 끊어내면서 6:6 전투를 피하는 방향으로 운영했습니다.


▲ 측면 고지를 점거하고 철벽 방어를 펼치는 엔비어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솔저 픽으로 자힐 메타를 완성한 선수가 지원가 전담의 HarryHook이라는 겁니다. 이 선수의 경쟁전 시즌 1, 2 모스트 픽은 맥크리, 솔저 로드호그 등으로 사실 딜러 출신입니다. 팀에 이미 Talespin과 Taimou라는 훌륭한 딜러가 있기에 지원가를 맡아서 할 뿐이지, 상황에 따라선 딜러로 전환을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죠.


▲ 시즌2 해리훅 선수의 모스트픽. 딜러라고 봐도 무방하다



◆ [점령전] 위도우메이커를 포함한 1탱 3딜 체제

이어진 3세트 '볼스카야 인더스트리'에서는 더욱 과감한 포지션 교체를 시도했습니다. 이번엔 탱커인 cocco가 루시우를 픽하고 HarryHook이 트레이서로 활약했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엔비어스가 선공이었음에도 1탱 2힐 3딜러 조합을 가져갔다는 겁니다.

특히 해설진마저 '설마 저 조합 그대로 나가나요?'라며 놀랐던 Taimou의 위도우는 A거점 돌파 과정에서 맹활약을 했습니다. Talespin의 겐지와 INTERNETHULK의 윈스턴이 적진을 헤집는 사이 Taimou가 A거점 2층 건물에 자리를 잡았고, 결국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거점 점령을 해버린 겁니다.


▲ 위도우메이커의 프리딜로 A거점을 빠르게 연 엔비어스


사실 Taimou의 위도우메이커 픽은 특이한 전략이 아닙니다. 적어도 엔비어스 입장에선 말이죠. Taimou는 한국에 방문하자마자 경쟁전에서 위도우메이커 연습을 했고, 평소 대회픽으로도 위도우메이커를 자주 사용하는 선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10월 12일 위도우메이커 상향 패치가 되면서 날개가 돋히게 된 것이죠.

이 조합은 17일에 있었던 컨박스 T6와의 경기에서도 그대로 나왔습니다. 역시 윈스턴 1탱에 위도우메이커, 트레이서, 겐지 3딜 조합으로 빠른 진입을 시도했죠.

이미 지난 경기 분석을 마친 컨박스 T6는 윈스턴이 위도우메이커를 끊어내며 프리딜을 막아내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 HarryHook의 트레이서가 거점을 초토화시키는 바람에 A거점을 바로 내주고 말았습니다. 엔비어스는 모든 선수가 에이스 수준의 피지컬을 갖췄음을 보여주는 조합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 [화물 운송] 3탱 + 파르시 조합

컨박스 T6와의 4세트 경기가 진행된 도라도에서는 무려 '파르시' 조합이 나왔습니다. 엔비어스는 공격임에도 리퍼나 겐지같은 딜러 없이 Taimou의 위도우메이커와 Talespin의 파라로 승부를 볼 작정이었죠. 탱커는 라인하르트와 자리야를 기용했습니다.

Taimou의 위도우메이커는 파라가 초반에 제공권을 가져갈 수 있게 돕는 역할이었고, 견제가 끝난 뒤엔 즉시 로드호그로 픽을 바꿔 3탱 조합으로 우직하게 화물을 밀었습니다. 이들을 지원하는 역할은 chipshajen의 아나. 메르시는 오로지 파라만을 보좌하며 포킹에 힘을 보탰죠.


▲ 경기 내내 T6를 괴롭혔던 테일스핀의 파라


이때 컨박스 T6의 조합은 리퍼, 트레이서, 라인하르트, 자리야, 루시우, 아나로 일반적인 2:2:2 조합이었기에 사실상 엔비어스를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맥크리같이 파라를 견제할 영웅이 없었기에 계속해서 포킹에 노출됐고, 체력이 감소한 영웅은 Taimou의 갈고리에 끌려가 비명횡사하거나 자리야의 궁극기에 정리되는 불리한 상황이 지속됐습니다.

이후 최종 목적지가 있는 발전소 내부에서는 '파르시' 조합이 조금씩 힘을 잃어갔습니다. 건물 내부였기에 공간이 좁은 데다가 T6의 Liz 선수가 맥크리를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파르시를 고집하던 엔비어스는 결국 공격 시간 40초 정도를 남겨둔 상태에서 로드호그를 맥크리로, 파라를 트레이서로 바꿔 전형적인 돌파 조합을 택했습니다.

이때부터는 온전한 피지컬 싸움이었는데요, 앞서 볼스카야에서도 선수 개개인의 실력 우위를 보여줬던 엔비어스는 Taimou의 맥크리가 3연속 처치를 기록하며 게임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 개개인의 피지컬에 무게를 싣는 유동적이고 과감한 픽이 강점

앞서 살펴봤듯이 엔비어스는 전장 성격에 따라 다른 조합을 취하는 것은 물론, 선수 각자가 다룰 수 있는 영웅의 폭이 무척 넓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에 반해 국내 선수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주 영웅이 정해져 있고, 다른 픽을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기량이 떨어집니다. 따라서 시시각각 조합이 바뀌는 엔비어스를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편이죠.

또한 엔비어스의 조합은 선수 개개인의 피지컬이 뛰어나기에 성립합니다. 이를테면 로드호그의 높은 갈고리 명중률로 상대 트레이서를 전담 마크해서 변수를 없앤다던가, 빠른 진입 후 상대 딜, 힐 처리를 위도우메이커에게 일임하는 형태의 돌파 방식이 그렇습니다.


▲ 엔비어스의 전담 마크가 돋보였던 T6와의 아이헨발데 경기


이 때문에 서로 견제를 하다가 한꺼번에 터지는 궁극기의 타이밍이 승부를 결정 짓던 기존 메타와는 경기 템포 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APEX 경기 도중 엔비어스가 힘싸움에서 밀리는 상황은 대개 엔비어스 자신들의 궁극기 실수거나 상대 아나의 수면총이 강화제가 투여된 리퍼, 파라 등에 적중했을 때였습니다.

이외의 상황에서는 상대 궁극기에 맞춰 메이가 눈보라로 전투 상황을 무효로 하거나, 자리야의 중력자탄으로 맞불을 놓는 방식으로 힘의 균형을 바로 잡았죠.


▲ 테일스핀의 파라가 라인하르트를 떨어뜨리자 타이무가 갈고리로 탱커를 끌어오는 장면

▲ 중력자탄으로 선공하고도 역으로 몰살당한 T6




■ 전진 수비? 엔비어스에게 세트 패배를 안긴 볼스카야

APEX 연승을 이어가고 있는 엔비어스지만 매번 압승만 한 것은 아닙니다. 17일 컨박스 T6와의 경기 중 볼스카야 인더스트리 전장에서는 세트 패배를 기록하고 말았거든요.

엔비어스는 OGN과의 인터뷰를 통해 '볼스카야 인더스트리', 그리고 '하나무라'에서 약하다고 언급한 바가 있고, 공교롭게도 APEX에서 두 번의 경기를 치르는 동안 추첨을 통해 볼스카야가 두 번이나 등장했습니다. 각각 마이티 스톰과 컨박스 T6와의 경기였는데요, 스스로 약점임을 밝혔으면서도 매번 '전진 수비'를 하는 과감함을 보였습니다.

일반적으로 국내팀은 볼스카야 인더스트리에서 수비를 할 때 A거점 안쪽에 산개하는데, 엔비어스는 공격팀의 진입로가 있는 입구 방향에서 전력 수비를 했습니다. 이것이 자신들의 '에임'에 자신이 있어서인지 좁은 진입로를 이용한 나름의 전략적인 플레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 볼스카야에선 항상 입구 전력 수비를 하는 엔비어스


확실히 딜러들의 명중률이 높을 수록 입구 수비는 적 딜러의 2층 진입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뚫리게 되면 그대로 거점이 노출되기에 상당한 리스크를 안게 되죠.

결과적으로 엔비어스는 두 팀 모두에게 A거점을 내주게 됐고, B거점에서도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마이티 스톰과의 2세트 경기를 치렀던 '왕의 길'에서 A거점 철벽 수비를 하던 모습과는 크게 대조됩니다.

게다가 컨박스 T6와의 3세트 경기에서는 볼스카야 B거점의 힘싸움에서 밀리며 세트 패배를 하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당시 엔비어스의 패배 요인은 T6의 Liz 선수 트레이서였습니다. B거점으로 선진입한 GAMSU 선수의 윈스턴에 엔비어스의 포커싱이 쏠리는 동안 Liz 선수가 탱커진을 끊어내면서 거점을 장악한 것이죠.

거점 점령 게이지가 차오르기 시작하자 INTERNETHULK와 Taimou는 급한대로 디바와 윈스턴을 꺼내 '비비기'에 나섰고, 이때부터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Liz의 트레이서를 마크하는 선수가 사라지게 됐습니다. 결국 트레이서의 프리딜에 3:6 또는 4:6 전투를 지속하게 된 엔비어스는 무려 3분 55초나 남겨둔 상황에서 B거점을 넘겨주게 됩니다.


▲ 상대 트레이서를 견제하지 못해 변수를 허용한 것이 패배의 원인이 됐다




■ '한국식 플레이'의 카운터일까? 완벽한 겐지 봉쇄

비록 볼스카야 인더스트리에서는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외 전장에서는 쟁탈, 점령할 것 없이 강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상황에 따른 다양한 픽, 개개인의 뛰어난 피지컬이 주요인입니다. 하지만 유난히 눈에 띄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바로 철저한 겐지 대응입니다.

기본적으로 엔비어스는 상대방 궁극기가 돌아올 시점이 되었다고 판단하면 산개한 형태로 최대한 자리야와 겐지의 궁극기에 대비했습니다. 이 때문에 겐지가 궁극기를 사용해도 제대로 활약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죠. 또한 겐지가 용검을 빼든 것이 확인되는 순간 아나의 생체 수류탄이 직격되고, 공격 대상에게는 자리야의 보호막이 칼같이 들어가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 보호막을 걸친 상대에 주춤하는 동안 어느새 생체 수류탄까지 맞은 겐지


게다가 딜러는 물론 탱커의 에임마저 뛰어난 엔비어스이기에 겐지가 2단 점프나 질풍참으로 회피 기동을 해도 이내 추적을 해서 처치를 해버리는 장면이 자주 보였습니다. 특히 컨박스 T6와 대결했던 아이헨발데에서는 3탱에 2힐, 메이를 섞어 겐지가 노릴 대상 자체를 없애 버렸고, 이후에는 맥크리를 기용하면서 상대 겐지의 진입을 원천봉쇄하기도 했습니다.


▲ 질풍참으로 진입한 겐지에게 섬광탄을 던져 처치하는 타이무

▲ 상대가 용검을 빼들자 즉시 소리 방벽과 산개로 대응하는 엔비어스

▲ 용검은 뽑았지만 그새 남은 체력이 72, 엔비어스의 메이는 얼음 속에 숨어버린 상황




■ 오는 금요일, 루나틱 하이와의 대결을 앞두다

지금까지 엔비어스의 APEX 주요픽과 특징적인 경기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국내팀과의 두 경기를 통해 느낄 수 있었던 엔비어스의 경기력은 그야말로 '빈틈이 없다'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상황에 따른 유동적인 조합은 물론 상대방의 궁극기 기습을 받아치는 대응법, 각자 전담한 상대 영웅을 압도해버리는 실력까지, 세계 1위에 걸맞는 경기를 보여주고 있죠.

이는 APEX 리그 해설진들이 언급했듯이 200회에 가까운 대회 경기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함입니다. 이에 반해 국내팀은 서로 호흡을 맞춘 기간이 짧고 대회 경험도 많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팀 전체가 한 몸처럼 움직이고 수시로 전략이 바뀌는 엔비어스를 상대로 고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엔비어스가 '무적'은 아닙니다. '팀'으로 뭉친지 얼마 되지 않은 컨박스 T6가 볼스카야 B거점에서 난전을 뚫고 세트를 따낸 것은 정말 괄목할만합니다. 이 때문에 금요일에 있을 루나틱 하이와 엔비어스의 경기가 더욱 기대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루나틱 하이는 각 선수가 오래 전부터 스페셜포스, 블랙스쿼드 등으로 FPS 경력을 쌓아왔고, 대회 경험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입니다. 또한 최근 APAC을 통해 유럽 강자 로그와도 두 번이나 대결해본 만큼 엔비어스를 상대로도 남다른 경기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 국내 유저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루나틱 하이, 과연 엔비어스전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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