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열 장의 기획서보다 한 명의 좋은 사람을 본다! 케이큐브벤처스의 투자법
이은별 기자 (desk@inven.co.kr)
개인적으로 스타트업을 만나는 일을 참 좋아한다. 패기와 열정으로 뭉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업무로 만났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느껴 그들의 성공을 빌어주곤 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스타트업이 잘 되지는 않았다. 어떤 곳은 큰 성공을 거뒀지만, 어떤 곳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연락이 두절되곤 했다. 참 안타까웠다.
허나 미안하게도 그들이 왜 실패했는지, 어떻게 했어야 성공했을 지 답을 주지는 못했다. 그런 부분은 기자보다 더 잘 알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지금 스타트업에게 투자를 진행하는 벤처캐피탈이라면 분명 해답을 주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스타트업의 베스트프렌드’, 케이큐브벤처스의 임지훈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스타트업에 대한 강연, 어떻게 해야 투자를 받고 성공할 수 있을 지 강연을 여러 번 진행한 임지훈 대표라면 분명 스타트업이 살 길을 확실히 말해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강연자로만 만나 봐서 그런지, 임지훈 대표를 보면 뉴욕 월 스트리트의 증권업자를 떠올리곤 했다. 회사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관련 서류도 사방 팔방으로 날리며 신경질도 내고, 수익을 확실히 챙겨갈 수 있을 지 면밀히 따져보는 프로 투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허나 사람은 대화를 해 봐야 안다고, 1:1로 만난 임 대표는 정제되지 못한 거친 표현에 막 나가는 입담을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계산적이고 똑 부러질 줄 알았는데 감정이 격해질 줄도 알고 표정 변화도 풍부한 사람이었다.
"젊은 놈이 나댄다고 절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죠. 투자한다며 강연 몇 번 하는 사람으로만 절 알고 있다면 당연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7년이란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이 일을 해 왔어요. 개인적으로 절 조금이라도 안다면, 제가 얼마나 스타트업이 잘 되길 바라고 노력하는 지 분명히 알 겁니다."
월 스트리트의 인상은 사라졌지만, 오히려 대화를 나눈 후의 그가 좀 더 좋았다. 스타트업을 위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자 역시 스타트업을 아끼는 마음이 같다 보니 순탄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정말 많은 말이 오갔다. 요즘 트렌드, 스타트업의 성공 비법, 케이큐브벤처스의 투자 조건 등…
게임업계 한정으로 인터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인터뷰인 줄 알지만 하고 싶은 말 막 할 테니 좀 두서 없을 거라고 먼저 당부하던 임지훈 대표. 사실 너무 꾸밈없이 말해서 온전한 인터뷰로 정리하긴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틀에 박힌 인터뷰가 아니어서 더 많은 이야기를 이 기사에 담을 수 있었다.
애니팡의 성공과 카카오 게임하기의 출범은 스타트업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 줬다. 약육강식의 세계나 다름없던 냉혹한 PC온라인게임 시장에 지친 개발자들에게 모바일게임 시장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나 다름없었다. 능력 있는 개발자 다수가 창업을 시도했고, 성공 소식도 상당히 많이 들려왔다.
한 여름 밤의 달콤한 꿈은 잠깐, 불과 1년 반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모바일게임 시장은 더 이상 작은 개발사가 희망을 안고 도전하는 곳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서로 경쟁해야 하는 콜로세움으로 바뀌었다. 흥행 게임 여러 개로 강력한 크로스 프로모션을 펼칠 수 있는 대기업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규모 개발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예전보다 시장이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고, 스타트업이 성공할 확률이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아예 성공의 문이 닫힌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장이란 게 자본의 논리대로 흘러가는 건 맞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좋은 게임이라면 선택받을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입니다.” 임 대표는 덧붙였다. 임지훈 대표가 벤처캐피탈 업계에 처음 뛰어들었던 8년 전에는 지표가 없으면 절대 투자를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절대 손해 보지 않고 수익을 낼 수 있을 때만 투자가 이뤄졌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공생이라는 마음가짐이 자리잡혀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라는 말은 업을 일으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업이란?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드는거죠. 은행에서 거액 대출이 어려운 기업가를 위해 투자를 집행하는 벤처캐피탈 역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믿고 있고요.”
‘스타트업의 베스트 프렌드’. 임 대표가 케이큐브벤처스를 소개할 때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어떤 벤처기업보다도 기업가를 진정으로 돕고 싶어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도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어야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그 신념대로 임지훈 대표는 수익만을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게임이 반드시 성공할 것 같아도 바로 투자를 집행하지 않는다. 임지훈 대표에게는 빽빽하게 적어 내려 간 백과사전 두께의 기획서도, 당장의 유행을 따라 잘 만들어진 게임도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임지훈 대표의 투자를 받으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임지훈 대표는 '좋은 사람이 좋은 게임을 만든다'고 믿는 사람이다. 여기서 '좋다'는 말은 인성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을 잘 만들어낼 수 있는 실력과 포기하지 않고 끊임 없이 노력하는 근성,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인품.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게임을 추구하는 진정성. 이 모든 것이 밑바탕이 된 사람이 임지훈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다.
"게임 기획서는 바뀔 여지가 크죠. 개발 초기에 생각했던 것이 런칭이 임박하면 또 달라지고, 시장 환경에 따라서 수시로 바뀌곤 합니다. 특히 지금은 꽤나 큰 규모의 모바일게임도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그만큼 개발 기간도 길다는 의미고, 최초의 생각이 변할 여지도 많다는 걸 의미합니다.
'세상은 변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임지훈 대표의 투자 철학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들이 다 같이 꿈꿔 왔던 게임을 만들기 위해 뭉친 팀이라면 지금 당장 실패하더라도 언제든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케이큐브벤처스가 그간 투자를 집행한 게임회사를 살펴보자. 해외 여러 곳에서 인기리에 서비스되는 '헬로히어로'의 개발사 핀콘도 있다. 넥슨프로야구마스터2013라는 완성도 높은 야구게임을 만들어 낸 넵튠도 케이큐브벤처스의 패밀리다. 이 밖에 임지훈 대표가 선택한 게임사들 대부분이 오랜 시간 서로 손발을 맞춰왔던 사람들로 구성된 회사다.
특히 임 대표가 대화 내내 자주, 그리고 자랑스레 언급한 회사는 핀콘이다. 임 대표 말에 따르면, 핀콘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던 회사였다. 이 회사가 얼마나 좋은지, 2012년에 투자한 3억 5천만 원을 아직도 회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를 묻자 하는 말이 일품이다. "그 회사는 더 많이 성공할 거거든요. 같이 더 오래 해먹으려고요."
'6성급 카드가 5장 모여있는 느낌'. 그는 핀콘의 첫 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제 막 창업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번듯한 기획서 한 장 있지도 않았고, 변변한 대표작 하나도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그가 단 두 번의 만남 끝에 투자를 집행한 이유는 바로 핀콘의 구성원들 때문이었다. 과거 웹젠에서 5년 넘게 손발을 맞춘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보고 싶던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열정. 그 두 가지가 임 대표로 하여금 3,5억 원이라는 거금을 선뜻 투자하게 만들었다.
“투자 후보 기업 미팅 때 자주하는 질문이 하나 있어요. 의견이 엇갈려 싸울 때, 누가 최종 의사결정을 하느냐는 질문인데요. 사전에 얘기라도 한 마냥 4명 모두 유충길 대표님을 선택하더라고요. 너무 선뜻 선택하길래 다시 물어봤죠. 저 사람을 어떻게 믿냐고.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사람이 언제나 맞지는 않다. 하지만 5년 넘게 지켜본 바로는 이 사람이 맞을 확률이 더 높았다. 이게 바로 우리가 유 대표를 믿는 이유다’. 이 얼마나 멋진 팀워크인가요. 완전 감동 받았죠.”
임 대표의 선택은 옳았다. 사람 빼고는 무엇 하나 갖춰진 것 없던 핀콘은 7개월 만에 모바일 RPG 시장을 열었던 ‘헬로히어로’라는 대작을 만들어 냈다. 뛰어난 실력과 멋진 팀워크를 바탕으로 서비스도 착실히 해냈다. 국내의 성공을 바탕으로 일본에서도 날아올랐고, 중국에도 진출하며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기업이 됐다. 연 수백억의 매출을 기록하며 기업공개 상장이 가능한 수준까지 성장했다.
“핀콘이 성공할 수 있던 이유는 실력있는 좋은 사람들, 그리고 운영능력입니다. 온라인처럼 모바일게임도 꾸준히 업데이트를 할 수 있어야 성공합니다. 패키지 형태의 게임은 오히려 국내보다는 북미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어요. 하지만 여긴 한국, 문화가 다릅니다. 라이브 잘하는 것이 곧 경쟁력이죠. 저 역시 게임에 대해 뭐라 하진 않지만, 운영능력은 갖추라고 충고하곤 합니다. 사람들도 더 충원하라고 말하고요.”
이 정도 듣다 보니 생긴 의문 하나. 임지훈 대표도 결국 기업가다. ‘수익’이라는 것에 아예 관심도 없진 않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 모여있더라도 수익하나 날 것 같지 않은 회사라면 선뜻 투자하기 힘들 테다.
“맞아요. 케이큐브벤처스도 사회공헌단체는 아닙니다. 하지만 수익을 원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그 자체가 아닙니다. 우릴 믿을 수 있는 근거로 필요한 거죠. 원금만 계속 까먹는 투자를 하면 누가 우릴 믿겠습니까? 우릴 믿고 도움을 요청할 스타트업을 위해 대외적으로 남부끄럽지 않을 수익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그가 설명했듯, 그에게 투자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다. 현 시스템 상 성공 가능성이 무한한 회사라도 초기 자본을 얻기란 쉽지가 않다. 임 대표는 그런 기업에게 투자해 꿈을 키울 수 있게 도와준다면, 그 도움을 얻고 성장한 기업이 다음 스타트업을 도와줄 수 있으며 결국 세상을 훨씬 좋아지게 할 거라 믿는다. 그에게 수익이란 다음 스타트업을 도와 줄 기업이 케이큐브벤처스를 믿을 수 있는 지표 정도일 뿐이다.
“수익이라는 건, 성공한 소수로 다수의 실패를 메꿀 정도면 됩니다. 저에게는 오래 같이 갈 소수의 성공이 중요하죠. 케이큐브 패밀리 역시 서로를 도와주고 있어요. 어떤 기업이 서버프로그래머가 필요하다면 선뜻 도와주고, 기술이 부족하다면 선뜻 지원하는 마인드가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전 무조건 사람을 봐요. 좋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으니까요.”
궁금한 점이 또 생겼다. 그럼 실력자들이 똘똘 뭉친 스타트업은 많다. 하지만 아무리 임지훈 대표라 해도 모든 스타트업을 다 투자하지는 않을 테다. 그럼 임지훈 대표는 어떤 스타트업에게는 투자하지 않을까?
기획서 하나 없이도 투자를 진행하는 임 대표지만, 몇 가지 꺼려하는 것이 있다. 첫 번째로는 급하게 결성된 팀. 모바일게임 열풍이라며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급하게 만든 회사는 경계한다고 한다. 서로의 역량을 완벽하게 이해 못하기 때문에 누구 하나가 뒤쳐지면 바로 갈등으로 이어지고, 결국 목표를 위해 사람을 버리고 대체 인력을 충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추세에 따라 회사를 만들면 또 하나 부작용이 있어요. 바로 진정성이 없다는 거죠. 애니팡 이후에 비슷한 기획서만 10개는 넘게 들어왔어요. 다들 애니팡보다 좀 더 기능이 많다는 말만 반복했죠. 윈드러너가 성공했다고 러닝 게임만 판다던가, 몬스터 길들이기가 떴다고 비슷한 RPG를 만든다던가…그럼 탈락이죠. 무엇보다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창업했는지를 명확히 설명해줘야 합니다.”
여러 미팅을 해 본 바, 추세에 따라 모바일게임을 개발하는 기업은 ‘밑천’이 드러난다는 것이 임지훈 대표의 주장이다. 그런 기업은 자신의 게임에 대해 영혼 없이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한다고 한다. 임 대표는 투자를 받고 싶다면 게임에 대한 성공 가능성을 주장하기 보다는, 어떤 개발사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게임업계에 대한 내공은 부족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설명하는 연습은 좀 했으면 좋겠더군요. 우리 회사의 신념은 무언지, 왜 우리에게 투자해야 하는지, 이 게임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는 진정성 있게 설명해줘야 합니다. 그 가치관이 맞는지 틀린지…그건 절대 중요하지 않아요. 시장은 보되, 어떻게 분석하는 지는 결국 개발사의 몫이죠.”
임지훈 대표는 자신이 투자자랍시고 게임에 관여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저로서 피드백은 줄 수 있지만, 게임의 주인은 게임사인데다 그들 모두가 게임 개발에 있어서는 임 대표보다 훨씬 전문가라고 믿기 때문이다. 임지훈 대표가 자신이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실력자를 원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학벌만 번듯해서 시장이 이러니까 이 게임은 괜찮다고 열변을 토하는 사람도 종종 있어요. 제 기준에선 절대 아니죠. 애정이 없으면 안됩니다. 제가 말한 대로 받아 적는 기업? 무조건 안되죠. 저는 인큐베이팅을 하지 않아요. 제가 뭐라 하건 자기의 믿음대로 따박따박 대드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또라이는 언제든 사고칩니다. 완전 말아먹거나, 혹은 완전 성공하거나 둘 중 하나에요. 하지만 미적지근한 기업보다는 훨씬 성공가능성이 높죠.”
임지훈 대표는 자신의 조건에 충족하는 기업이라면 100% 신뢰한다. 투자금을 어떻게 썼는지도 관심없다. 한 달에 한 번씩 형식적으로 약식 재무재표만 받을 뿐이다. 투자했던 기업이 망하더라도 투자금 회수에 열을 올리지도 않는단다. 그저 수고했다는 악수 한 번하고 다음 인연을 기약한다고.
“못 믿겠으면 뒷조사도 해보세요. 아니, 사실 케이큐브벤처스가 아니라 투자를 요청한 회사를 꼭 뒷조사 해보시길 바랍니다. 뒷조사라는 게 투자자만의 권리가 아니에요. 창업자들도 자신의 지분을 줄 예비파트너를 면밀하게 확인해야 하죠. 3년에서 5년이나 같이 갈 파트넌데, 그저 투자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꼼꼼하게 살펴보세요.”
임지훈 대표는 스타트업이 투자자를 선택할 때, 투자는 받았지만 결국 실패한 회사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다고 충고했다. 투자자가 태도를 180도 바꾸는 상황이 대부분 투자한 회사가 실패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투자자는 기업가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투자자와 기업은 갑을 관계가 아니라 서로 공생할 수 있는 파트너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대표가 케이큐브벤처스를 두고 ‘스타트업의 베스트프렌드’라고 자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업을 해 본 사람은 창업의 어려움을 안다고, 케이큐브벤처스의 투자팀원도 대부분 창업에서 실패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임대표는 팀원들에게 항상 경고하는 것도 ‘투자가 실패하는 건 괜찮다. 허나 기업가를 함부로 대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란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궁금한 것이 계속 생겼다. 이 세상에 스타트업은 많다. 하지만 임지훈 대표에게 투자 받을 스타트업은 일부일 뿐이다. 특히 그가 중요시 생각하는 ‘오랜 시간 함께 손발을 맞춰 온 실력자’의 조건 중 ‘오랜 시간 함께’나 ‘실력’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팀도 있다. 그렇다면, 풋풋한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이 만든 기업이나 모르는 사람끼리 막 결성한 기업은 투자를 받을 수 없다는 걸까?
답변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였다. 실력을 믿는 벤처도 있을 거고, 패기를 보는 투자자도 있다. 케이큐브벤처스가 투자한 ‘발컨’이란 게임사의 대표 역시 30대 초반이었지만 그 열정이 너무 엄청나서 감동한 나머지 투자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직접 투자하진 않았지만, ‘판타지러너즈’라는 게임을 만든 문래빗 역시 원래는 1인 기업이었으나 열정과 실력으로 인정받은 경우다.
“하지만 경력이 없다면 투자 받기가 썩 쉽지만은 않을 거에요. 투자자는 상대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곳에 투자하기 마련이거든요. 하지만 투자사가 없다고 절망하긴 이릅니다. 요새는 대기업들이 게임사의 경력을 쌓게 도와주는 인큐베이팅 센터를 많이 운영하고 있거든요. 네오위즈, 넥슨, 스마일게이트가 있겠네요. 제가 감사로 있는 게임인재단도 그 중 하나죠. 분명 길은 있을 겁니다.”
암만 그래도 모든 개발사들에게는 투자 받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최소한의 간섭만으로도 게임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탈 기업이 케이큐브벤처스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투자사에게라도 투자 받을 수 있는 비법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하나의 투자사를 이끄는 대표 입장에서 다른 투자사에게 투자 받는 방법을 가르쳐달라는 질문이 썩 유쾌하지 않았을 텐데도 임지훈 대표는 선뜻 대답해 주었다.
“제가 누누히 얘기했듯이 자신의 회사와 게임에 대한 열정을 설명할 줄은 알아야 합니다. 투자자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해요. 기획서 쓰는 것보다 설명하는 연습을 많이 해 두세요. 이건 케이큐브벤처스 뿐만 아니라 모든 벤처캐피탈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또 하나 더 얘기하자면, 자신의 게임에 관심있을 만한 벤처캐피탈을 미리 찾는 사전 조사를 꼭 해야 해요. 투자할 때 가장 답답한 건 투자사의 정보를 하나도 안 찾아보고 오는 기업가에요. 최소한 홈페이지라도 찾아보세요. 최소한의 숙지는 있어야지 투자를 검토하는 데 시간을 줄일 수 있어요.”
임지훈 대표는 투자하려는 산업을 정확히 이해하는 투자사를 고르라고 신신당부했다. 게임에 투자해 본 벤처캐피탈이라면 지금 이 게임이 다른 게임보다 성공할 수 있는 차별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테고, 게임산업에 대한 대화로 이어질 거라는 것. 그는 최대한 많은 투자사를 만나 자신에게 맞는 파트너를 찾아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덧붙인 말. “뒷조사도 꼭 하시고요!”
또한 시장을 잘 알아둘 것도 당부했다. 다른 기술업계와는 다르게 모바일게임 업계의 트렌드는 대충 보이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시장을 대충이라도 파악하고는 있을 거라는 말이다.
“예전에는 어떤 장르가 흥행할 지 감도 안 잡혔지만, 지금은 대략 가닥이 잡힙니다. 넷마블이 성공한 것도 유저의 필요성을 잘 알고 빠르게 적절한 모바일게임을 선보였기 때문이지요. 이젠 우연찮게 성공할 수 있던 꼼수의 시대가 아닙니다. 애정을 가지고 고심해서 만든 게임이 성공하지요. 이제부터 진검승부입니다. 이 역량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어야 투자받을 기회를 한층 더 많이 가져갈 수 있어요.”
현재 케이큐브벤처스가 진행하는 20건의 투자 중, 게임회사에 대한 투자는 7건이다. 약 40%의 높은 비율이다. 임지훈 대표도 게임을 굉장히 좋아하는 유저인데다, 게임 역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중 하나라 믿기 때문이다. 그는 유저의 필요성을 충족시킬 게임이라면 분명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게임에 대한 투자 비율은 계속 유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게임은 좋은 놀이문화 중 하나로, 음악이나 TV방송 쇼핑처럼 여가 시간을 책임져 주고 삶의 활력을 불러 일으킨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역사상 가장 오래된 놀이 문화죠. 몸소 놀던 행위가 현대 들어서 디지털로 변했을 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역할 자체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임지훈 대표는 게임의 순 기능을 부정하고 나쁘게만 몰고 가는 지금 현실에 대단히 분노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게임은 그 어떤 산업보다도 경쟁력 있고 수익성 있는 사업인데, 이를 무시하고 업계를 제압하려는 건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카이스트 출신이다 보니 개발자들을 많이 알고 있어요. 근데 그 중 가장 뛰어난 개발자들은 대부분 게임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실력 있는 사람들이 모인 산업을 소수의 중독자들을 핑계삼아 타박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좀 강하게 얘기할까요. 전 핑계를 찾고 있다고 봅니다. 아이를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부모가, 그 부모의 불만을 컨트롤 못하는 사회가 말이죠.”
임지훈 대표는 게임 중독 문제의 근원은 중독된 ‘사람’에게서 찾아야 되며, 업계에서 찾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업계 역시 중독에 대한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리는 마련하는 등 어느 정도 의무는 행해야 더 발전할 수 있을 거라 당부했다.
“저 역시 게임으로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거고요. 게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세상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훌륭한 팀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기업이라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다른 벤처캐피탈도 똑같이 생각할 겁니다. 모쪼록 즐겁게, 행복하게 게임을 만들어주세요!”
☞ 케이큐브벤처스 블로그
☞ 임지훈 대표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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