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연구진 "게임 중독, 정식 질병 등재되면 혼란만 야기"
정필권 기자 (desk@inven.co.kr)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연세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연구를 진행한 '게임과몰입 연구에 대한 메타분석'의 결과 보고서를 8일 공개했다.
해당 보고서는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의 윤태진 교수가 연구 책임을 담당했다. 윤태진 교수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과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연세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디지털 게임 역시 대중문화의 단면이라는 전제를 두고, 이전부터 게임을 하나의 문화로 보아왔던 인물이다. 2015년 '디지털 게임문화연구', 2016년 '게임과 문화연구' 등 게임과 관련한 여러 학술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3월 게임문화재단이 주관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게임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당시 윤태진 교수는 "게임 포비아는 뉴미디어 포비아와 신세대 문화 포비아 두 가지 공포의 결합"이라고 설명하며, 게임을 질병으로 보는 시각이 공포에 기반을 둔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게임 장애 정식 등재가 논의되는 5월 세계 보건 총회를 앞두고 공개된 이번 보고서는, 그간 게임 장애 질병 코드화에 관해 진행된 연구들을 종합하고 분석한 결과를 보여주고자 했다.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된 결과를 일련의 기준하에 재분류함으로써 연구의 경향성을 파악하고 영향력을 미칠 것인지를 확인하는 데 목적을 뒀다.
연구진은 먼저, 게임과몰입과 질병코드화를 다루는 국내외 연구 중 DSM-5 발효 시점 이후 현재까지(2013년~2018년) 주요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 다수를 종합했다.
게임 장애와 관련된 논문들은 주로 의약학과 사회과학 분야에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의약학 내 정신의학 관련 논문이 268건을 차지했고 사회과학 분야에서 심리학 위주로 분석하여 현상을 바라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국내와 중국, 타이완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에서 정신의학 관련 논문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의약학 분야 연구들은 주로 게임 과몰입을 병리적인 현상으로 정의하거나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를 수용하는 경향에서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판단했다. 이는 게임 과몰입과 중독을 옹호하는 연구라고 하더라도, 학술적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약 75.6%의 논문이 무분별한 수용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국내 논문들이 무비판적 수용 비율이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총 677편의 논문 중에서 대한민국 연구자에 의한 논문은 총 91편으로 가장 많았고, 대부분이 의약한 분야에서 발표됐다. 이는 곧 게임 중독 연구 분야에 있어서 대한민국 의학계의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 의약학 연구자의 논문 중에서 무비판적 수용 입장을 보인 논문의 수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월등히 많은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관련 논문들 내에서 다양한 입장이 혼재된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게임중독에 대한 정의를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것은 물론, 참고문헌에 기존 게임 과몰입 및 중독 선행연구가 인용되어 있기도 했다. 이외에도 기존 DSM이나 ICD의 정의를 따르거나, 해당 정의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진단 기준에 대한 논란의 여지를 인정하는 등 잠정적 또는 부분적 옹호 입장이 혼재됐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게임중독에 대한 개념 정의에 대해서 학술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학자별로 자의적인 개념을 명확한 구분 없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체 논문 중에서 게임중독 개념을 정의하는 방식은 총 16개에 이를 정도다.
또한, 연구마다 쓰인 진단 도구 및 척도가 상이하고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논문에서 사용된 척도 중 직접적으로 게임 중독에 관련된 척도는 30개 이상이다. 논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척도인 IAT(Internet Addiction Test)도 게임 중독이 아닌 인터넷 중독을 진단하는 목적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연구진은 IAT 척도를 임의로 수정하여 게임 중독 척도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 뒤, 이러한 상황이 게임 중독 진단의 타당도에 영향을 끼치는지는 알 수 없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IAT 척도는 개발 당시부터 절단점에 대한 임상적, 학술적 근거가 없다고 개발자가 직접 밝힌 바 있고, 처음 제안된 1998년부터 20년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한 것인지에도 의문을 던졌다. 2001년 개정이 되기는 했으나, 해당 개정도 17년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척도들이 명확히 검증된 것이 아님에도 이를 바탕으로 진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척도에 대한 지적점 외에도 장르나 플랫폼 등 상이한 플레이 경험에 따른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게임종류를 명시한 경우에도 구체적인 특성의 구분이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특정 장르와 게임을 지목하는 논문에서는 해당 게임과 장르에 따른 중독 원인, 인과관계 분석보다 연구 진행 당시 가장 인기가 많은 장르를 무분별하게 채택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현재 모바일 게임 시장의 규모가 성장했음에도 모바일 게임을 중독 대상으로 연구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대부분 MMORPG를 거론했으며, 연구 중 다른 게임에 비해 MMORPG가 더 강한 중독성을 보인다는 언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임의 역기능적 요인과 병의 요인으로 게임을 다룰 때에는 분석이 제한적이었으며,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게임의 순기능적 요인을 다룰 경우에 더 정교한 분류와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해당 보고서의 요약 결론 부분에서 '게임과몰입·중독 연구가 병리적 현상을 유발하는 무언가'로 게임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게임 중독을 병의 원인으로 규정하는 과정에서 게임 자체의 속성과 분류에 무지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곧 게임 장애에 대한 학술적 합의가 부재한 것을 의미하며, '학술적 합의가 부재한 상황에서 정식 질병 등재 시에는 현재의 혼란을 더욱 야기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학문영역에서의 '집단행위'의 행태보다는, 가능하다면 게임과몰입 이후에도 앞으로 마주하게 될 여러 새로운 사회적 현상의 이해를 위해 다양한 학문영역의 상호작용 및 편견 없는 수용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