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전 출장 대기록, 모든 심판들이 묵묵하게 도와준 덕분이에요!

스포츠 경기에서 멋진 플레이와 화려한 세레모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공정하고 깨끗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데요.
어떤 경기이든 간에, 결과가 깨끗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면 아마 신뢰를 잃게 되겠죠.

e스포츠에도 이런 결과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이기도 한데요, 공정한 결과를 위해 달리는 이 분들! 바로 e스포츠 심판입니다.

인벤팀은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국e스포츠협회 공인 심판 중
공식전 500전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신 오형진 심판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오형진 심판과의 특별한 만남, 지금부터 함께하시죠!



오형진 심판과의 특별한 만남


안녕하세요, 오형진 심판님.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반갑습니다. 한국e스포츠협회의 오형진 심판입니다. 작년 11월부터 심판장으로 취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벤과의 인터뷰가 제가 매체와 진행하는 첫 인터뷰입니다. 그러다보니 좀 많이 떨리네요. 제가 좋은 답변을 드릴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인터뷰에 임하겠습니다(웃음).


일단 역대 2번째 공식전 500경기 출장 달성(지난 1월 20일 CJ ENTUS와 SK텔레콤 T1의 경기)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세요?

3년이 흐르고, 4년이 흐르고, 그렇게 500경기에 출장하게 됐네요. 뭐라고 표현해야될까요, 제 자신에게 굉장히 수고했다는 말을 해 주고 싶어요. 한편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후배 심판들도 많이 늘어났고, 그만큼 1급 심판들도 후배들이 많은 비전을 볼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 거에요. 더 많은 도전도 해야 될 거고요.

저는 심판장으로 있다보니 이제 개인적인 목표보다 더 큰 목표가 생겼어요. 전 사실 프로리그 심판 제도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있어요. 일단 국내에서는 e스포츠 리그가 열릴 때 정식으로 심판을 기용해 진행하는 리그가 많지 않을 뿐더러, 전 세계 어디도 정기적으로 4심제를 선택해 운영하는 곳은 없을 정도에요.

이 모든게 우리 협회 심판들이 잘 하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전 세계에 우리 심판들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심판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어요. 묵묵하게 항상 제 자리를 지켜준 우리 심판들에게 고마워요. 공식전 500전 출장을 2번째로 달성할 수 있었던 데는 모두 우리 심판들의 도움이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 오형진 심판의 500전 출장 경기는 바로 CJ 엔투스 대 SK텔레콤T1의 대결이었습니다 ]


500전을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꼽아주신다면?

신한은행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09-10시즌 결승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광안리는 e스포츠의 성지나 마찬가지잖아요. 그런 무대에 주심으로 설 수 있었다는 게 정말 감격적이었어요. 트로피를 들고 맨 앞에서 입장하는데, 정말 제가 다 떨리더라고요. 그런 큰 경기를 진행하면서 아무런 사고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것도 정말 기뻤고요.

하지만 그 경기가 가장 소중한 경기는 아닌 것 같아요. 1, 2년 차 때는 중요한 준결승이나 결승, 야외무대에 대한 욕심이 있었어요. 큰 무대, 더 큰 경기를 좋아했죠. 그런데 3년 차 때부터는 매 경기가 다 소중하더라고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 사실을 깨달은 뒤로는 아마추어 대회도 많이 다녀요.


우선, 심판이 되는 방법에 대해 좀 자세히 설명해주신다면요?

우선 심판이 되기 위해서는 협회 이름의 자격증이 필요합니다(웃음). 너무 당연했나요? 3급 심판부터는 정식으로 협회에서 발급하는 심판 자격증이 지급됩니다. 이 증명이 있어야 정식 심판으로써 활동을 할 수 있고요.

심판 선발 같은 경우에는 2가지 경우의 수가 있는데요, 첫 번째로 'e스포츠 종사자' 전형이 있습니다. 선수, 감독, 코치 등 e스포츠 관계자로 일정 기간 이상 근속했을 경우에는 그 전문성을 인정해서 2급 심판으로 바로 채용하고 있습니다.

김선묵 심판이 그런 경우인데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이라 그 경력을 인정해 2급 심판으로 바로 채용됐습니다. 또한 배성희신나라 심판은 WCG 등에서 오랜 기간동안 심판 업무를 수행하신 경력을 인정, 작년부터 2급 심판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일반 전형은 3급 심판부터 시작합니다. 자리가 나거나 인원이 필요할 때마다 보도자료나 공지 등으로 채용을 공표하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받는 1차 전형을 시작으로 채용 과정이 이뤄집니다. 이후 e스포츠 역사나 심판 규정을 묻는 필기시험과 교육, 면접 등을 거쳐 합격을 통보하며, 합격을 하더라도 현장에 나가려면 현장 교육 프로세스를 거쳐야만 3급 심판이 될 수 있습니다.


[ ▲ 협회 공인 심판 자격증의 멋진 모습! 이 자격증이 있어야 심판으로 활동할 수 있다 ]


현재 협회 공인 심판은 총 몇 분이 계신가요?

현재 1급에서 3급까지 통틀어서 50명 정도의 정식 심판이 있고요, 정확히 1급 심판 7명, 2급 심판 16명, 3급 심판 27명이 있습니다. 지금 협회에는 양환석 심판, 유동구 심판, 신동아 심판이 있다. 이외에도 원래 1급 심판으로 활동하셨던 황규찬 심판, 강미선 심판, 임기홍 심판은 현재는 일을 그만두셨지만 심판 자격은 유지하고 계십니다.


심판에 대한 정보가 많이 알려져있지 않은 편인데요, 심판의 정확한 업무 범위가 궁금합니다.

심판은 일단 한국e스포츠협회 본사(이하 협회)에서 업무를 보는 내근직 심판과, 현장에서 심판 업무만 보는 외근직 심판으로 나뉩니다. 내근직 심판은 협회 업무를 함께 병행하면서 외근 심판 업무를 수행합니다. 그리고 외근직 심판들의 경우는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스페셜포스 프로리그, 대통령배 아마추어대회, 국제대회 파견 등 주로 대회에서 만날 일이 많지요.

외근직 심판들은 바로 현장으로 출근해서 현장에서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필요 교육이 있으면 협회에 방문하는 정도고요. 내근직 심판들은 모두 1급 심판입니다. 모든 경기에 주심으로 나가고요. 그리고 각자 협회에서 담당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스타크래프트의 기록들과 관련한 업무들을 모두 담당합니다. '진기록 명기록' 부분에 관한 것은 제가 총괄하고 있고요, 더불어 저는 심판장이다보니 심판 교육과 더불어 심판 운영 총괄도 맡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2군 리그를 담당했었어요. 지금 선수 풀이 좀 적은 편이긴 한데, '군단의 심장'이 출시되면 다시 잘 해보고 싶습니다. 어느 스포츠든, 그 뿌리는 2군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2009년부터 2군 리그를 담당해왔었고, 제 개인적으로도 2군 리그에 애착이 많은 편이에요. 2군 리그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 지금 모두 각 게임단의 에이스가 되어있거든요. 정명훈, 김유진, 김민철, 김성대 등 모두 다승왕 경쟁을 했던 친구들입니다. '될 성 부른 나무'였죠(웃음).


1급, 2급 등 심판에 급수별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책임 소재나 업무 별 차이가 어떻게 다른가요?

심판의 급수는 3급부터 시작합니다. 3급, 2급, 1급 심판으로 구분되어 있고요, 이 인원들을 통솔하는 심판장이 있습니다. 3급, 2급 심판들 같은 경우는 각종 리그에서 부심으로 활동하는 인원들입니다. 대규모의 지방 리그가 생길 경우에는 주심으로 활동하는 일도 있긴 합니다. 저희가 메인으로 활동하는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이하 프로리그)에서는 부심으로만 활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1급 심판들은 주로 주심 역할을 수행합니다. 부심 배정도 가끔 나긴 합니다만, 인원이 안 나올 때 지원을 나가게 되는 경우 외엔 주심으로 출장합니다. 모든 심판들이 본 임무는 경기에 출장해서 심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같습니다. 다만 역할 별로 좀 차이가 있는데요, 프로리그를 예시로 들어드리겠습니다.

현재 프로리그는 4심제입니다. 주심 1명, 부심 2명, 대기심 1명 제도입니다. 대기심은 프로리그 내의 계정 관리, 대기 PC 관리 및 관중과 게임단 요청 등을 관리합니다. 부심 두 명은 양 측 선수 옆에서 게임을 지켜보는 심판들입니다. 주심은 상황이 생겼을 때 부심과 대기심의 이야기를 종합해 최종 판정을 내리게 되고, 판정 결과에 책임을 지는 심판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 프로리그에서 판정을 내리고 있는 오형진 심판의 모습 ]



처음부터 프로리그는 4심제(네 명의 심판)로 진행되어왔나요? 그렇다면 인력이 많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2006 시즌까지는 주심 혼자 모든 것을 판정했고, 2007년부터 2심 제도로 진행됐어요. 3심제가 도입된 것은 2009년이고요. 현재 4심제 제도는 2011년 말에 확립됐어요. 스타크래프트2 계정 접속 문제 때문에 처음 대기심이 필요성이 생겼고요, 이후 게임단과 관중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문제까지 커버하기 위해 대기심 제도가 생겼습니다.

3심제가 도입되게 된 계기는 사실 2009년 프로리그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데요. 이른바 '곁눈질 사건'이라고, 신상문 선수의 행동이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각 부스에 부심이 한 명씩 배치되어 있던 시절이 아니라, 한 쪽의 부스에 부심이 있으면 다른 한 쪽의 부스를 확인할 수가 없었죠. 주심은 부심의 눈과 귀를 가지고 판정을 내리는 것이기에 부족함이 있었어요. 그래서 3심제가 도입됐습니다.

그렇게 쭉 3심제로 도입되다가, 지난 'SK플래닛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즌2' 말에 4심제로 변경됐습니다. 방금 말씀드렸던 스타크래프트2 계정 사전 접속 문제 때문에 대기심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판정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들… 오형진, '오심'에 대해 입을 열다


심판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오심'이잖아요. 사실 지난 티빙스타리그 8강 때 이와 관련된 이슈가 있기도 했고요. 당시 이야기를 좀 해주신다면요?

말씀드리기 전에, 그 때 판정과 관련해 일체 해명을 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심판은 경기 판정 내용과 관련해 언론 인터뷰를 일체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거든요. 그렇다보니 판정 이후에 어떤 상황이 나오면, 코칭스태프나 선수의 입장이 보도되곤 해요. 그런데 한 쪽의 입장만이 나가다 보면 다른 쪽의 입장이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어 좀 안타깝죠.

잊어버릴수도 없어요. 8강 C조 2경기였어요. 그 당시 경기 중간에 이영한 선수가 2해처리 뮤탈리스크 올인 전략을 펼치다 PP를 걸었어요. 올라가보니 드래그가 안 되길래 확인해보니, 옵션에 '고정 키'가 체크되어있더라고요. 사실 고정 키 문제는 사전에 체크해야 될 규정이기에 선수 측에 주의 징계를 주고 경기를 속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내려왔어요.

그런데 체크 해제를 하고 게임 화면으로 돌아와도 계속 적용이 안 되는 거에요. 그래서 컴퓨터를 재부팅해야만 하는 상황이 왔죠. 고정키가 걸려있는 상황에서 경기를 속개할 수는 없으니, 현재 상황을 그대로 저장한 뒤 이 세이브 파일을 통해 경기 속개를 하겠다고 1차 판정을 내렸어요.

그 이후가 문제였죠. 세이브 구현에 문제가 있어 복원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경기 속개를 할 수가 없으니까, 재판정을 내려야되는 상황이 왔고 그 부분이 논란이 많이 됐었던 것 같아요. 제가 내릴 수 있는 판정은 두 가지였어요. 우세승이냐, 재경기냐. 결론적으론 오심이 됐지만, 1차 판정 때는 경기 속개라고 판정했으므로 2차 판정 때 우세승 판정을 내리기가 어려웠어요.

당시 e스포츠 최초로 김윤환 코치에게 퇴장 명령까지 내렸죠. 결과적으로는 선수에게 영향을 줬던 부분이라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마음이 무겁더라고요. 하지만 저도 기준에 따라 최대한 공정하게 판정을 내리려 노력했음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네요.


결과 판정에서 '심판의 재량에 따른다'라는 규정이 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 개인적인 기준이 있으신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선수를 위하는 결정을 내리자는 거에요. 두 번째는 근거가 합리적일 것. 사실 어떤 판정을 내리든 간에 한 선수는 불이익을 받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양 쪽에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노력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많은 팬 분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셨던, 'PPP 몰수패' 사건 있잖아요. 경기 중단 요청을 할 때 'PP'를 눌러야 하는데, 'PPP'등 지정된 단어 외에 다른 키를 누르면 몰수패 처리가 됐던 판정들 말이에요. 그 담당 심판이 창석준 선배였는데, 만일 창석준 심판이 몰수패 판정을 내리지 않고 경기 속개를 했다면 큰 징계를 받았을 거에요. 왜냐하면 관련 규정이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거든요.

심판은 최종 결정자가 아니에요. 회의체에서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는 입장이죠. 심판은 규정을 만들지 않아요. 외부에서 봤을 때는 심판이 몰인정하다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없는 부분이 있죠. 그렇다보니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선수들을 배려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 ▲ 군단의 심장에서는 리플레이로 원하는 시점을 지정해 다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


'군단의 심장'에서는 경기 도중에 경기가 중단되더라도 리플레이를 통해 원하는 시점부터 다시 진행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됐는데요. 심판으로써 어떻게 보시나요?

일단 정말 환영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가장 최근의 오심도 이런 기능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겠죠? 일차적으로 선수들의 권리를 제대로 찾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됐다는 점이 정말 기쁩니다. 심판의 주어진 역할이나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기능인 것 같아요.


경기 규정이 상당히 많은데, 전부 외우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일단, 몇 조 몇 항에 무슨 규정이 있는 지는 못 외워요. 하지만 어떤 규정이 있는 지는 당연히 완벽히 숙지하고 있죠. 3년 차 때부터는 항상 경기 전에 규정집을 봐요. 한 번 숙지했다 하더라도, 한동안 놓고 있으면 까먹기 마련이거든요. 오심 이후에 더 조심하려고 해요.



'영어보다 더 값진 것을 배웠어요' 오형진 심판 성장기


최근 글로벌하게 영역을 펼쳐가고 있는 e스포츠이니만큼,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외국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떠세요, 본인의 영어 실력을 평가하신다면요?

확실히 영어가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해외 연합팀인 EG-TL팀이 합류하면서 해외 소속 선수들이 굉장히 많아졌고, 현장에서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해졌어요. 그리고 제8게임단 소속 후안 로페즈 선수도 있고요. 다행히 배성희신나라 심판, 임민우 심판 등이 영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알기에 업무적인 부분에 지장은 없지만, 저도 심판장으로써 언어 문제는 신경써야만 할 부분이죠.

앞으로도 계속 해외 선수들이 프로리그에 진입할텐데, 통역에 계속 의존할 순 없잖아요. 저 자신도 의사소통이 되어야 판정을 좀 더 공정하게 내릴 수 있을 테고요. 그래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는 단계까지 왔고요. 경기 시작 전에 채팅으로 선수들과 경기에 관해 간단하게 대화를 하기도 해요.


업무와 영어 공부를 병행하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셨을 것 같은데요. 단기간에 영어 능력이 상승하는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웃음).

사실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이렇게 단기간에 영어 실력을 늘리기란 불가능했을 것 같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던 중에, 협회에서 기회를 주셨어요. 2011년도 3월부터 11월까지 '체육인재육성재단'의 후원으로 영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거죠.

이 영어 교육을 들을 수 있는 대상은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들, 코치, 감독, 메달리스트 등 대한체육회에 소속된 단체에 한정되어 있어요. 협회는 준가맹단체라서 원래 사실 이 수업을 들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제 위에 계신 서형석 차장님께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개척해주셨어요. 먼저 중급 과정을 수료하시고, 정말 훌륭한 평가를 받으셨기 때문에 뒤이어 들어가는 저도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이 교육은 사실 경쟁률이 정말 높아요. 이력서도 내고, 자기소개서도 작성해서 통과 후에 면접도 봐야만 해요. 그 이후에야 비로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죠. 처음에 면접을 보러갔을 때 생각이 나네요. 제 옆에 전부 다 TV에 나오는 분들만 계시는 거에요.

그래서 정말 많이 긴장했어요. 하지만 간절함이 긴장을 눌러줬던 것 같아요. 내가 여기서 붙어야 내 후배들도 받을 수 있고, e스포츠 종사자들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불타올랐거든요. 나중에 붙고 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저한테 '형진 씨는 신입사원 면접 온 줄 알았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면접관들이 하나같이 다 놀랐대요. 정말 예상 질문부터 답변까지 다 준비해갔었거든요. 다행히 제 열정을 알아주셔서, 초급부터 중급, 고급 과정까지 모두 수료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열심히 해야 할 이유는 또 있었죠. 그 당시 MBC게임 프로리그가 있던 시절이라, 경기 날짜와 교육 날짜가 겹쳤거든요. 저 때문에 다른 심판들이 더 경기에 출장해야만 했어요. 그리고 당시 (황)규찬 선배, (강)미선 선배 등 선배들이 계셨는데 중간 서열이었던 제가 기회를 받았다보니, 선배들의 기회를 가로챈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있었죠.

그래서 정말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제가 잘 하게 되면, 서형석 차장님께서 제게 기회를 만들어주셨듯 저도 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잖아요. 결과적으로, 수료식 때 개근상을 받을 수 있었어요. 성적 우수상은 반장들이 가져갔는데, 전 그 상보다 개근상이 더 좋아요. 9개월 동안 한 번도 안 빠졌다는 이야기잖아요. 함께 했던 다른 분들께 모두 e스포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줄 수 있었고요.


[ ▲ 성실한 오형진 심판의 책상 위에는 항상 영어 단어집이 함께 한다 ]


기대했던 것보다 더 엄청난 이야기를 들은 기분입니다. 영어 공부 말고도 얻은 게 많으실 것 같은데요.

영어를 배우기도 했지만, 열정을 많이 배웠죠. 핸드볼 대표팀 감독님, 스케이트 메달리스트 최은경 선수 등 정말 자신의 피땀어린 노력만으로 길을 개척해 나가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제 자신도 사실 e스포츠 심판으로써, 남들이 흔히 가지 않는 분야에 대한 생각이 많았었거든요. 이 분들을 만나면서 많은 교훈을 얻고, 함께 공부하면서 열정을 배우다보니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분들이 고민하는 것에 비해, 전 정말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다른 분들은 국가적으로 큰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등에서 '반짝'한다는 것에 큰 압박감을 받고 계시더라고요. 생계 문제나 연습량 등에 힘들어하시면서도 영어 공부를 하러 오시고 말이에요. 그런 부분에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이 수업에서는 다른 분들과 꿈을 공유하는 자리도 많았어요. 한 감독님은 대회에서 영어로 의견을 제시할 때,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불이익을 많이 받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신은 선수들을 위해서 공부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제 판정이 전부 다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치니까요. 저도 e스포츠에 대한 애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에, 제 자신 뿐만이 아니라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안 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멘토로 삼고 있는 분이나, 특별한 도움을 주신 분이 계신가요?

물론 계십니다. 첫 번째는 창석준 심판님이세요. 심판에 대한 기본 마인드, 자질, 의사 소통, 판정 프로세스 등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알려주신 분이십니다. 제가 심판으로써 역량을 갖추고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어요. 제가 오심을 했을 때도 좋은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주셨고요.

두 번째는 서형석 차장님이세요. 제가 영어를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길을 알려주신 분이시죠. A만 보고 있을 때 'B라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분이기 때문에, 제가 더 넓은 시야로 매사를 볼 수 있게 됐어요. 이런 깨달음을 다른 부분에도 적용할 수 있었고, 그 덕택에 제가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세 번째는 바로 경기 운영팀의 김진태 대리님이세요. 김 대리님은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분이세요(웃음). 프로리그, KEG 운영부터 해서 위원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업무들을 담당하고 있으시다고 해도 될 정도죠. 제가 처음에 들어왔을 때 기본적인 내부 보고서 같은 것들도 제대로 작성하지 못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잡아주셨어요.

그만큼 정말 많이 혼나기도 했죠. 하지만 관심이 없으면 혼내지도 않는다는 걸 알아요. 애정이 있고, 가르치고 싶으니까 질책하시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됐고요. 김 대리님 뿐만 아니라 세 분이 전부 다 그러셨어요. 그 외에도 저를 협회로 이끌어주신 이재형 팀장님도 그렇고,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넘어 세계까지… '글로벌 활약 펼치며 우수성 알리겠다'

[ ▲ 선수와 항상 소통하려는 오형진 심판 ]

심판님의 게임 실력은 어느 정도이신지?

스타크래프트1(이하 스타1) 때는 사실 잘 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부족한 실력을 어떻게해서든 보는 눈으로 메꿨죠. 그런데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2)로 넘어오면서, 실력도 같이 좀 오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팀리퀴드, 트위치TV같은 개인방송부터 GSL 등 거의 모든 VOD는 다 본 것 같아요.

스타2로 넘어간다고 했을 때, 제 전적을 보니 2천 게임을 넘게 했더라고요. 프로 선수들은 몇 게임 안 하더라도 마스터(래더 등급)로 간다고 하던데, 저는 피파 선수 출신이라 APM에 좀 느린 편이에요.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했어요. 지금도 경기 나가기 전에는 해당 팀 VOD도 꼭 챙겨봐요. 심판의 실력이 자질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종족은 프로토스에요.

다른 게임으로는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을 틈틈히 해요. 작년에 아마추어 대회 정식 종목이었어요. 심판으로 출장하려면 종목을 알아야하잖아요. 한 600게임 정도 한 상태고요, 랭크 게임도 100게임 이상 했어요. 이번 3시즌에는 60게임 정도? 승률도 다행히 50%는 넘어요(웃음).


심판을 하시면서 아쉬웠던 점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지금 돌이켜보면, 오심을 하거나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했을 때가 기억나네요. 하지만 가장 아쉬운 부분은 제 판정으로 인해 선수들의 경기에 영향이 갔을 때에요. 그런 상황들로 인해 경기 결과가 바뀌었을 때 정말로 아쉬워요. 제가 마치 판정을 당한 것처럼요.

심판은 선수가 없으면 필요 없는 존재에요. 선수가 있기에 팀이 있고, 팀이 있기에 리그가 있는 것처럼 선수와 리그가 있어야 심판이 존재합니다. 그런 상황들로 인해 선수에게 영향이 가면 그것만큼 심판으로써 안타까운 일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그동안 경험했던 것들을 후배들은 안 할 수 있도록 항상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해야 후배 심판들이 저같은 실수를 하지 않죠(웃음). 실수를 공유해야 더 나은 발전이 있는 거니까요. e스포츠 역사상 단 두 번의 오심이 있었는데, 그 두 번이 전부 다 제가 했던 거라 더욱 이런 실수가 나오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 ▲ 오형진 심판의 모니터를 장식하고 있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경구 ]


심판으로써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신가요?

제가 해외 대회에 나간 건 두 번이에요. ieSF 루마니아 대표 선발전과 중국 동방명주에서 열렸던 대한항공 스타리그 시즌2에 출장했었죠. 그 후 방에 세계 지도를 하나 들여놨어요. 몇 년 뒤엔 어디에 가보고 싶다는 걸 적어놨죠. 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e스포츠 심판으로써, 토너먼트 매니저로써 일하는 게 꿈이거든요.

특히 제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프로리그 발전과 함께 이런 경험들을 살려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엔 한국에 돌아와 후배 심판들에게 이런 경험들을 공유하고, 후인을 양성할 수 있는 그런 e스포츠 인재가 되고 싶습니다.

또 다른 꿈은 e스포츠가 정식 스포츠로써 인정받는 거에요. 2011년 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에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거기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는데, 다른 종목의 나이 지긋하신 심사위원 분들에게 e스포츠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아직 e스포츠가 나아가야 할 길은 멀었지만, 이런 곳에서부터 인정을 받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꿈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던 계기가 됐어요. 이번 2013년 실내 아시안게임에서도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어요. 한국에서 열리는 큰 대회니까, 후배 심판들도 같이 준비하고 노력해서 이를 바탕으로 많은 해외 대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해야할 것 같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릴게요.

항상 함께해주는 소중한 친구들인 '산커피' 모임에 고맙다고 전하고 싶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는데, 정말 제가 사랑하는 친구들이고 의지 많이 하고 있다고 전해주고 싶네요.

그리고 앞으로도 저희 심판들에게도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 프로리그 많이 사랑해주세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