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게임. 그리고 'e스포츠'"

'게임'이라는 같은 코드로 엮여 있지만, 쉽게 어울리는 코드는 아니다. 어쩌면 e스포츠 기성종목들이 모바일과는 전혀 관련없는 환경에서 발전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정확한 클릭과 조작. 'e스포츠'는 두뇌 싸움과 동시에 극도의 반사신경과 동체시력을 겨루는 '피지컬'을 요구한다. 경기 시작 전, 자신에게 익숙한 최적의 세팅을 위해 자를 써 가며 키보드와 마우스 위치를 세팅하는 선수들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반면 '모바일'의 입력 구조는 대부분이 '터치 앤 드래그'다. 모든 모바일 기기에 통용되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대체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유일한 입력 방식이다. 누가 봐도 e스포츠 기성종목에 적용될 정도는 절대 아니다. 물론 '하스스톤'처럼 피지컬보다는 '뇌지컬'을 극도로 사용하는 게임도 있고, '베인글로리'처럼 애당초 하드코어한 플레이 스타일을 노리고 만들어진 게임도 있긴 하다. 그래도 '모바일'과 'e스포츠'가 썩 어울리는 건 아니지만.

물론 이 두 개념이 완전히 상반되는 거울의 이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모바일 게임에도 e스포츠 못지않은 경쟁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고, 실제로 많은 플레이어들이 모바일 게임에서 타 유저와의 경쟁을 즐기곤 한다. 다만, '주류 e스포츠'로 취급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SSA'의 권순범 대표는 이 두 가지 상반된 게임 시장의 조화를 꿈꾸고 있었다. 동남아와 한국, 그리고 미국에 이르기까지, 그는 '모바일 게임'과 'e스포츠'를 하나로 묶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동시에 같은 주제로 3월 21일부터 3일간 진행되는 'MGF(Mobile Game Forum) 서울'에서 강연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추위가 한풀 꺾인 완연한 봄날. 권순범 대표가 인벤 강남 사무실에 찾아왔다. 그를 만나기 전 들었던 '모바일'과 'e스포츠'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직접 듣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SSA와 MGF, 그리고 모바일 게임의 e스포츠화에 이르기까지. 권순범 대표와의 대화를 글로 옮겨 보았다.

▲ SSA 권순범 대표


'SSA' - 모바일 게임, 그리고 e스포츠
Q. 만나서 반갑다. 사실 'SSA'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다.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지 말해줄 수 있나?

두 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하나는 국산 모바일 게임들을 동남아 시장에 현지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온라인, 오프라인 e스포츠 리그들을 대행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e스포츠 전용 소셜 플랫폼을 만드는 중이다.


Q. 'SSA'라는 회사는 언제 만들어진 건가? 그리고 현재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2012년 9월에 나 혼자 만든 회사다. 지금은 미국과 동남아에 파트너가 있고, 한국에도 한 명의 직원이 더 있다. 우리 회사 이름을 처음 들었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 작은 회사고,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 '베인글로리'는 '모바일'과 'e스포츠' 통합의 좋은 예


Q. '모바일 게임의 e스포츠화'라는 목표는 어떻게 정하게 된 것인가?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가?

WCG(월드 사이버 게임즈, World Cyber Games)에서 일할 당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스폰서를 따야 할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쪽에서는 단순 브랜딩을 꺼렸기에 다른 방법을 고심하다가 생각한 게 모바일 게임을 이용한 대회였다. 그때야 미봉책과 같은 수단이었지만, 이후로 계속 머릿속에 품고 언젠가 실현할 날을 기다려왔다.

한 번은 '퓨어기프트'라는 이름으로 직접 게임을 만들어서 리더보드도 달고, 게임 대회도 여는 컨셉으로 만들어 보았는데 상금만 엄청나게 쓰고 고생했던 적이 있다. 쉬운 일은 아니더라. 그래도 꾸준히 모바일 게임의 e스포츠화는 생각하고 있었고, SSA를 만들게 되었다.


Q. 기존 e스포츠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게임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을 추구할 것 같은데, 어떤 게임들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리그오브레전드나 도타 같은 게임들을 소재로 뭔가를 하기엔 이미 기성 시장의 문턱이 너무 높다. 우리가 처음부터 생각해온 방향이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우리는 '모바일 게임'을 e스포츠화하는 것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Q. 말은 쉽지만 상상하기는 어렵다. 모바일 게임의 e스포츠화라면 '베인글로리'와 같은 종목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베인글로리가 훌륭한 게임인 것은 맞지만, 모바일 환경에서 확실한 경쟁 구도를 만들려면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존 e스포츠에서 승패를 판가름하는 요소는 정밀한 컨트롤과 상황 판단 능력인데, 이를 모바일 환경에서 보여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때문에 피지컬보다는 머리를 써야 하는 스타일의 게임들을 주로 생각하고 있다.

▲ 머리를 쓰는 'e스포츠'는 이미 존재한다


Q. 모바일 시장은 게임 순환 주기가 굉장히 빠르고 유저 이탈과 유입도 복잡하게 이뤄진다. 선수 풀이나 관중 확보도 당면과제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확실히 중요한 부분이다. 일단 유저층의 확보는 e스포츠화 전에도 반드시 필요한 순서다. e스포츠에서 성공한 게임들의 공통점은 비단 선수층뿐만 아니라 그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의 수와 저변이 갖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e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자신을 무의식중에 대입시킨다. "나라면 저기서 이렇게 할 텐데", "저런 방법도 있었구나!"와 같이, 게임 속 플레이와 자신의 플레이를 비교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경기를 즐긴다. 이 말은 곧,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이 잠재적인 관중이라는 뜻이다.

그 때문에 우리도 '유저층 확대'를 가장 첫 스텝으로 삼을 생각이다. 모바일 시장의 게임 순환 주기는 분명히 빠르지만, 과거의 흐름을 반추해보면 이 역시 장르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 'RPG'는 굉장히 빠르게 바뀌지만, 퍼즐이나 전략 소셜 게임 같은 장르들은 오랜 기간 유저들에게 사랑받는다. 'COC(클래시 오브 클랜)'같은 게임 말이다. 실제로 필리핀에서는 'SMART'라는 통신사가 주최한 COC 대회가 진행되었던바 있다.

물론 이 모든 과정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많은 유저들이 즐길 수 있고, 경쟁적인 요소를 갖춘 게임을 선정하는 과정이다. 나는 동남아 현지에서 수많은 PC방을 방문했다. 동남아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아직 '게임 하면 PC'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에, PC게임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PC방에서 '모바일'과 'PC' 두 플랫폼에서 모두 플레이 가능한 '크로스 플랫폼' 게임을 중점적으로 보았다.

▲ 현지 PC방을 통해 정보를 모았다.


Q. 그럼 어떤 모바일 게임들을 e스포츠와 접목할지 생각해 보았는가?

굉장히 다양하다. 모바일 게임의 e스포츠화는 그동안 작은 시도만이 있었을 뿐, 본격적인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에 익숙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잠재력이나 가능성은 충분하다. 앞서 말했듯 필리핀에서는 'SMART'라는 통신사가 독자적으로 대회를 진행했던바 있다. 이 과정에서 SMART는 독자적인 규정을 만들었고, 이 규정을 이용해 충분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물론 초반의 대회는 이렇게 통신사 간의 관계나, 혹은 아직 예측할 수 없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나마 대회가 진행될수록 '모바일 게임의 e스포츠화'에 대한 개념이 점점 탄탄해질 수 있고, 나아가 이를 받쳐줄 사회 저변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콘텐츠'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첫 게임을 어떤 게임으로 삼느냐에 따라 진행 속도가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e스포츠는 '스타크래프트' 덕분에 황금기를 맞이했고, 앱스토어는 '앵그리버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카카오 게임 플랫폼 또한 '애니팡'이 없었으면 많이 늦춰졌을 테다. 필리핀이야 어느 정도 저변이 있지만, 앞으로 새 게임으로 진입하려면 좋은 콘텐츠를 찾아놓는 것이 필수적이다.


Q. 동남아 시장을 제1시장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동남아 시장의 잠재적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베트남 시장만 볼 때 작년 한 해 약 2천억 원 규모였고, 태국은 이보다 조금 더 크며, 인도네시아는 그보다도 저금 더 크다. 필리핀은 시장 자체는 작은 편이지만 유저수 대비 결제액이 높은 편이다. 아마 동남아 시장을 전부 다 합치면 2012년-2013년 정도의 한국 시장 정도 규모가 나올 거다.

동남아 시장을 제1시장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생각한 구도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도 있고, 시장의 구조나 게이머들의 성향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최적의 시장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과거 진행되었던 'SMART'의 COC 대회는 그 당시엔 그저 통신사가 주최한 대회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개발사가 이를 인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 더 나은 퀄리티의 대회들이 꾸준히 열릴 것이다.

▲ 동남아 모바일 시장의 규모도 이제 무시할수 없다


Q. 만약 동남아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치면, 그다음 목표는 어디로 생각하고 있나?

지금 당장은 동남아 시장에 주력하고 있다. 모바일 시장의 흐름만큼이나 이 역시 빠르므로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까지는 어떻게든 결론이 날 것 같다. 그 이후엔 한국을 생각하고 있다. 이미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잠재적 동반자들도 있기 때문에 여건이 된다면 빠르게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다음엔 ESL이다. ESL 쪽도 따로 모바일 게임과 관련된 사업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이 잘 풀린다면 아마 '협력' 구도로 가지 않을까 싶다.


Q. 어떻게 보면 엄청난 모험이다. 모바일 게임과 e스포츠.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잘 될 거라고 확신하나?

그래서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는 거다. 스타크래프트는 지금도 아마추어 리그가 열리고,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햇수로만 20년 가까이 말이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은 길어봐야 2-3년, 짧으면 몇 개월이다. 그 주기마다 직접 게임을 선별하고, 대회를 준비하는 건 확실히 한계가 있을 거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대회를 열거나, 리그를 돌릴 수 있을 정도의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


'MGF' - 세계 모바일 시장의 거물들이 모이다.
Q. SSA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이번에 우리가 만나게 된 계기가 'MGF' 때문인데, 'MGF'는 사실 국내 게이머들에게 유명한 행사가 아니다. 어떤 행사인지 말해줄 수 있나?

'MGF'는 '모바일 게임 포럼(Mobile Game Forum)'의 약자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 등지에서는 이미 12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GDC'와 같은 행사와는 조금 다른 게, 다른 컨퍼런스가 게임 개발에 관련된 내용까지 하드코어하게 들어간다면, 'MGF'는 비즈니스와 관련된 주제들이 주를 이룬다.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모바일 게임업계의 거목들이 전부 모이는 행사이기도 한데, 작년에 처음으로 아시아권에서 행사가 열렸다.



Q. 서울에서 MGF가 열리게 된 계기가 따로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서울로 정해진 건가?

작년에 연사로 MGF에 참여한 후 행사가 너무나 맘에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MGF를 열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보았고, 다행히도 당시 한국 모바일 게임시장은 어느 정도 알아주던 시기였기 때문에 강하게 어필한 끝에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MGF 서울에 난 연사로 참여하지만 동시에 공통 개최자이기도 하다.


Q. 한국에서 MGF가 열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일단 한국 모바일 시장은 아직도 세계에서 3-4위의 규모를 갖춘 시장이다. 그러다 보니 세계 각국의 모바일 게임 회사들도 항상 한국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번 MGF 서울은 그들에게 한국 모바일 시장을 알리고, 반대로 한국의 모바일 게임 관계자들이 세계 각국의 관계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또한, 'MGF' 자체의 성장도 의미 있지만 별도로 열리는 '아이콘스'도 큰 의미가 있다. '아이콘스'는 모바일 게임사의 CEO나 창업자 등 굵직한 거물들이 주로 참가하는 컨퍼런스로, 명실상부 모바일 시장 최고의 권위를 가진 행사 중 하나다.

▲ '게임 중심'의 컨퍼런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Q. 이번 MGF에서 눈여겨 볼만한 코드는 무엇인지 꼽아보라면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에서 MGF를 진행할 생각이 있는가?

이번 MGF의 메인 코드라면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한 가지는 내가 강연을 하는 주제기도 한 '모바일 게임과 e스포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MNA에 관련된 내용이다. '어째서 MNA를 치르고 나면 개발사의 창의력은 떨어지는가?'라는 주제인데,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한다.

MGF는 정해진 주기마다 열리는 행사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열리곤 하는데, 이를테면 3월에 서울에서 열리는 것과 별도로 4월 중에는 홍콩에서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아마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가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올해 안에 한 번쯤 더 한국에서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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