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타1, 부활과 추억의 경계선에서
신동근 기자 (desk@inven.co.kr)
몇 달 전, 유명한 온라인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10주년 기념으로, 이벤트 형식으로 화산 심장부라는 오리지널 시절 레이드 던전을 현재 레벨 수준에 맞게 수치를 조절해 리뉴얼한 적이 있다. 오리지널 시절 레이드 던전의 향수를 기억하고 있는 유저들은 처음에는 '추억의 화심(화산 심장부)이 돌아왔다'며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막상 화산 심장부가 열리자 유저들은 추억 속에 감춰진 화산 심장부의 잔혹한 진실과 마주해야만 했다. 골렘의 발길질 두어 방에 탱커는 사경을 헤맸고, 무서울 정도로 강한 일반몹 구간에 40명 전원이 죽어라 고생을 해야 했다. 클리어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평균 서너 시간, 지칠 대로 지친 유저들은 종래에는 상당수가 '그냥 추억으로 있는 게 좋을 뻔했다'는 말을 했다.
스타크래프트1 브루드워(이하 '브루드워')는 최초의 e스포츠 종목으로 한국에서 큰 붐을 일으켰다. 당시 막 생겨나기 시작한 PC방 문화와 겹쳐 브루드워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게임 채널에서는 24시간 브루드워 관련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했다.
브루드워가 낳은 새로운 직업이 바로 '프로게이머'다. 게임하는 것 자체를 좋게 보지 않는 기성세대에게 '게임만 잘 해도 충분히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1세대 프로게이머가 나타나고, 그들이 은퇴할 때가 되면 새로운 신성이 나타나 그 자리를 채웠다. 초창기에는 고작 몇 명에 불과했으나 이 순환이 거듭되면서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마침내 '프로게이머'라는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만큼 브루드워의 인기는 대단했으며, 실제로도 상당한 명작이었다.
그러나 성자는 필쇠라. 아무리 뛰어난 것이라 해도 영원할 수는 없다. 천하제일의 진미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상하기 마련이고,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육식 동물도 세월이 흐르면 늙어 이빨이 빠지고 결국은 죽는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브루드워가 아무리 2000년대를 평정한 게임이라 해도 그 인기가 영원할 수는 없다. 이미 세계 대회의 공식 종목은 정식 후속작인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2')로 넘어간지 오래이며, 당시 브루드워가 구가하던 인기는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가 이어받았다.
브루드워는 스타2에 바톤을 넘겨준 후 블리즈컨에서도 빠졌고, 더 이상 글로벌로 진행되는 어느 대회에서도 공식 종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승부조작 사태 때문에 갑작스레 생을 마감하게 되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브루드워는 황혼기에 접어든 게임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브루드워는 세월이 지나면서 주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러나 추억이 강하면 그 추억을 되팔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 법이다. 문제는 향수를 달래주는 용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판을 망가뜨린 주범들이 추억을 되팔려고 한다는 점이다. 최근 이슈가 된 대회가 바로 SSB 리그이다. 바로 승부조작 가담자가 주최자인 브루드워 리그였다.
어떤 프로 스포츠든, 승부조작은 모든 자격을 정지시킬 정도로 강한 철퇴를 내린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추억팔이용 대회를 여는 것도 놀라운데, 그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나선 전 프로게이머들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벌린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였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SSB 리그에 참가하려 했던 바로 그 '전 프로게이머' 대다수들이 바로 '부활'한 스베누 스타1 스타리그의 참가자라는 사실이다. 브루드워를 철저하게 망가뜨린데 일조한 사람이 브루드워 리그를 열겠다는 사실도 기가 차지만, 현재 브루드워 대회에 참가 중인 사람들 중 상당수가 승부조작 가담자 리그에 거리낌 없이 참가 신청을 했다는 사실도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현 스베누 스타1 리그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과거 브루드워가 흥행하던 시절 프로게이머로서 활동하던 사람들이다. 팬들은 그들의 뛰어난 경기력, 프로다운 승부욕, 약간의 신비주의에 매료되어 선수 개개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그러나 다수의 선수들은 은퇴한 이후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 일부 선수들만이 은퇴 이후에도 '이러한 길이 있다'는 모델을 제시해주었을 뿐, 많은 선수들은 뚜렷한 쇠락을 경험해야만 했다. 한때는 스타로 추앙받았던 선수들이 인터넷 방송의 유료 아이템 확보를 위해 춤을 추거나 온갖 기괴한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한다.
이 행동을 절대적으로 '잘못'이라고만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도 사람이고,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프로게이머에 대한 이미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의 새로운 앞날을 개척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후배 선수들에게 언젠가 자신들의 앞날이 별풍선 같은 유료 아이템에 좌우된다고 한다면, 방송을 통해 욕설이나 기타 부적절한 행동으로 꾸준히 구설수에 오르내린다면, 과연 누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e스포츠도 스포츠라고 당당히 의견을 펼칠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한때 브루드워로 부와 명예, 팬들의 사랑을 받던 사람들이 브루드워의 숨통을 끊은 사람이 여는 '브루드워' 리그에 참가한다는 사실이 한없이 씁쓸할 뿐이다. 수 년 전, e스포츠 판을 발칵 뒤집어놓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받게 했던 승부조작 사태가 남긴 교훈의 가치가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았나.
그렇게 프로의식도 없고 경각심도 없는 이들이 모인 대회는 대체 누굴 위한 대회고, 뭘 위해 열리는 것인가. 그러면서도 당당한 e스포츠고 스타1의 완벽 부활이고 아름다운 추억인가.
설사 이런 승부조작범들이 개최하는 것이 아닌 정상적인 브루드워 리그가 열린다면 그것을 환호해야 하는 것일까? 브루드워는 이미 3년 전인 2012 티빙 스타리그에서 끝을 고했다. 그러나 티빙 스타리그 폐막식에서의 감격적인 작별 인사가 무색하게 도로 브루드워를 끄집어내 스베누 스타1 스타리그가 만들어졌다.
혹자는 '그래도 리그가 많아지면 좋은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또한 'e스포츠 판을 평정했던, 그리고 여전히 인기가 있는 추억의 옛 게임을 가지고 다시 대회를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일리는 있다. 브루드워는 여전히 재미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전설적인 게임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단순히 경기 하나, 대회 하나가 아니라 e스포츠라는 큰 틀에서 봤을 때 과연 브루드워 리그가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이미 한참 전에 타 게임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브루드워를 보고 이 게임의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며 새로 뛰어드는 아마추어를 만들 수 있는가? 스타2의 인기가 브루드워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해도 바로 그 스타2처럼 프로 체계가 잘 잡혀 있어 다양한 리그가 열리고 블리즈컨 등 해외 대회에 참가할 정도가 되는가? 카운터 스트라이크 : 글로벌 오펜시브나 도타2처럼 국내 성적이 형편없다 하더라도 대규모 해외 시장을 노려볼 정도의 충분한 잠재력이 있는가?
셋 다 아니다. 요컨대 긍정적인 선순환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고 과거의 추억을 다시 팔아먹는 재탕 컨텐츠만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정겨운 브루드워와 선수들을 다시 보는 것은, 아직 브루드워의 향수를 짙게 느끼는 일부 수요층을 만족시켜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보는 재미는 굳이 '리그의 부활'이라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단발성 대회라든가 이벤트 매치 형식으로도 충분하다.
현 스베누 스타1 리그에 참가했던 선수 중 일부는 SSB 리그 참가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도 개인 방송에서 유료 아이템을 위해 욕설이나 자극적인 언행을 일삼기도 하고, 때로는 인성 문제가 이슈가 될 정도로 행동하는 등, 눈앞의 돈 때문에 전 프로로서의 자긍심을 모두 팔아버린 듯한 행동으로 프로게이머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은퇴한 게이머 중에는 임요환처럼 끝까지 e스포츠 판에 열과 성을 다한 뒤 다른 분야로 전향하거나, 홍진호처럼 예능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스타로 떠오르거나, 최연성, 송병구처럼 자신의 친정 팀을 위해 헌신하거나 공무원이 되는 등 모범적인 사례도 있다. 그러나 부적절한 언행, 프로게이머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이 계속 방송에 비치며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빈도가 많아질수록 이런 모범적인 사례가 조명 받기는 힘들어진다.
브루드워 대회가 열리는 것에 대해 '인기론'을 들고 나올 수도 있다. 스타2가 브루드워만큼 성공하지 못했으니 인기 없는 스타2 대신 브루드워 대회가 열리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논리대로라면 한국에서 LOL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게임의 대회는 전부 없어져야 맞다. PC방 점유율로 따지면 2위부터 그 아래로 모든 게임을 합쳐도 LOL의 점유율을 이기지 못하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LOL만 남고 모든 대회가 사라지면 이걸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까.
e스포츠 판에 다른 어떤 긍정적인 변화도 가져오지 않는, 단지 향수를 달래주기 위한 추억팔이용 대회 대신, 종종 한 번씩 단발성 이벤트전 개념으로 인기 많던 선수들을 초청해 짧은 온라인 매치를 여는 정도로만 해도 된다.
현재의 브루드워 대회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못지않은 사람들이 프로게이머 이미지 실추, 과거에 비해 떨어지는 경기력 때문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과거의 추억을 위한답시고 꺼낸 리그가 오히려 추억을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항상 스스로가 e스포츠 종주국이니 강국이니 하는 것을 어필하고 있지만 실상은 15년이 넘은 브루드워의 화려했던 기억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고 현재도 LOL을 제외한 다른 종목은 철저히 소외받는 갈라파고스다. 진짜로 e스포츠 종주국이라거나 강국이란 걸 어필하고 싶다면 추억팔이 대회가 아니라 경쟁력은 있지만 국내에서 소외받는 종목에 도움을 주는 것이 낫다. 아니면 끝까지 추억에만 얽매이다가 화려한 옛날을 곱씹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좋게 평가해서 추억의 회상이라고 치자. 그런 추억의 회상도 두 번이나 봤으면 이미 볼 만큼 봤다. 추억을 팔아도 가끔 한 번씩 팔아야 효과가 있지, 매일 팔다가는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는 법이다. 시대의 흐름, 세계적 추세에 발을 맞출 때도 됐다. 한국이 진짜 e스포츠 종주국, 강국이란 평가를 듣고 싶다면 말이다.
아무리 소중한 것, 대단한 것이라 해도 보내야 할 때는 보내줄 줄 알아야 한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았을 때가 가장 아름답고 추억이기에 아름다운 법이다. 수명이 다한 고목에 물을 부을 때가 아니라 아직 피지 못한 새싹에 물을 줄 때도 됐다.
그러나 막상 화산 심장부가 열리자 유저들은 추억 속에 감춰진 화산 심장부의 잔혹한 진실과 마주해야만 했다. 골렘의 발길질 두어 방에 탱커는 사경을 헤맸고, 무서울 정도로 강한 일반몹 구간에 40명 전원이 죽어라 고생을 해야 했다. 클리어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 평균 서너 시간, 지칠 대로 지친 유저들은 종래에는 상당수가 '그냥 추억으로 있는 게 좋을 뻔했다'는 말을 했다.
스타크래프트1 브루드워(이하 '브루드워')는 최초의 e스포츠 종목으로 한국에서 큰 붐을 일으켰다. 당시 막 생겨나기 시작한 PC방 문화와 겹쳐 브루드워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게임 채널에서는 24시간 브루드워 관련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했다.
브루드워가 낳은 새로운 직업이 바로 '프로게이머'다. 게임하는 것 자체를 좋게 보지 않는 기성세대에게 '게임만 잘 해도 충분히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1세대 프로게이머가 나타나고, 그들이 은퇴할 때가 되면 새로운 신성이 나타나 그 자리를 채웠다. 초창기에는 고작 몇 명에 불과했으나 이 순환이 거듭되면서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났고, 마침내 '프로게이머'라는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만큼 브루드워의 인기는 대단했으며, 실제로도 상당한 명작이었다.
그러나 성자는 필쇠라. 아무리 뛰어난 것이라 해도 영원할 수는 없다. 천하제일의 진미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상하기 마련이고, 세상에 무서울 게 없는 육식 동물도 세월이 흐르면 늙어 이빨이 빠지고 결국은 죽는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브루드워가 아무리 2000년대를 평정한 게임이라 해도 그 인기가 영원할 수는 없다. 이미 세계 대회의 공식 종목은 정식 후속작인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2')로 넘어간지 오래이며, 당시 브루드워가 구가하던 인기는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가 이어받았다.
브루드워는 스타2에 바톤을 넘겨준 후 블리즈컨에서도 빠졌고, 더 이상 글로벌로 진행되는 어느 대회에서도 공식 종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승부조작 사태 때문에 갑작스레 생을 마감하게 되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브루드워는 황혼기에 접어든 게임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브루드워는 세월이 지나면서 주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러나 추억이 강하면 그 추억을 되팔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 법이다. 문제는 향수를 달래주는 용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판을 망가뜨린 주범들이 추억을 되팔려고 한다는 점이다. 최근 이슈가 된 대회가 바로 SSB 리그이다. 바로 승부조작 가담자가 주최자인 브루드워 리그였다.
어떤 프로 스포츠든, 승부조작은 모든 자격을 정지시킬 정도로 강한 철퇴를 내린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추억팔이용 대회를 여는 것도 놀라운데, 그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나선 전 프로게이머들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벌린 입을 다물기 어려울 정도였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SSB 리그에 참가하려 했던 바로 그 '전 프로게이머' 대다수들이 바로 '부활'한 스베누 스타1 스타리그의 참가자라는 사실이다. 브루드워를 철저하게 망가뜨린데 일조한 사람이 브루드워 리그를 열겠다는 사실도 기가 차지만, 현재 브루드워 대회에 참가 중인 사람들 중 상당수가 승부조작 가담자 리그에 거리낌 없이 참가 신청을 했다는 사실도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현 스베누 스타1 리그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과거 브루드워가 흥행하던 시절 프로게이머로서 활동하던 사람들이다. 팬들은 그들의 뛰어난 경기력, 프로다운 승부욕, 약간의 신비주의에 매료되어 선수 개개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그러나 다수의 선수들은 은퇴한 이후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 일부 선수들만이 은퇴 이후에도 '이러한 길이 있다'는 모델을 제시해주었을 뿐, 많은 선수들은 뚜렷한 쇠락을 경험해야만 했다. 한때는 스타로 추앙받았던 선수들이 인터넷 방송의 유료 아이템 확보를 위해 춤을 추거나 온갖 기괴한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한다.
이 행동을 절대적으로 '잘못'이라고만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도 사람이고,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프로게이머에 대한 이미지가 훼손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의 새로운 앞날을 개척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후배 선수들에게 언젠가 자신들의 앞날이 별풍선 같은 유료 아이템에 좌우된다고 한다면, 방송을 통해 욕설이나 기타 부적절한 행동으로 꾸준히 구설수에 오르내린다면, 과연 누가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e스포츠도 스포츠라고 당당히 의견을 펼칠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한때 브루드워로 부와 명예, 팬들의 사랑을 받던 사람들이 브루드워의 숨통을 끊은 사람이 여는 '브루드워' 리그에 참가한다는 사실이 한없이 씁쓸할 뿐이다. 수 년 전, e스포츠 판을 발칵 뒤집어놓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받게 했던 승부조작 사태가 남긴 교훈의 가치가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았나.
그렇게 프로의식도 없고 경각심도 없는 이들이 모인 대회는 대체 누굴 위한 대회고, 뭘 위해 열리는 것인가. 그러면서도 당당한 e스포츠고 스타1의 완벽 부활이고 아름다운 추억인가.
설사 이런 승부조작범들이 개최하는 것이 아닌 정상적인 브루드워 리그가 열린다면 그것을 환호해야 하는 것일까? 브루드워는 이미 3년 전인 2012 티빙 스타리그에서 끝을 고했다. 그러나 티빙 스타리그 폐막식에서의 감격적인 작별 인사가 무색하게 도로 브루드워를 끄집어내 스베누 스타1 스타리그가 만들어졌다.
혹자는 '그래도 리그가 많아지면 좋은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또한 'e스포츠 판을 평정했던, 그리고 여전히 인기가 있는 추억의 옛 게임을 가지고 다시 대회를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일리는 있다. 브루드워는 여전히 재미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전설적인 게임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단순히 경기 하나, 대회 하나가 아니라 e스포츠라는 큰 틀에서 봤을 때 과연 브루드워 리그가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이미 한참 전에 타 게임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브루드워를 보고 이 게임의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며 새로 뛰어드는 아마추어를 만들 수 있는가? 스타2의 인기가 브루드워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고 해도 바로 그 스타2처럼 프로 체계가 잘 잡혀 있어 다양한 리그가 열리고 블리즈컨 등 해외 대회에 참가할 정도가 되는가? 카운터 스트라이크 : 글로벌 오펜시브나 도타2처럼 국내 성적이 형편없다 하더라도 대규모 해외 시장을 노려볼 정도의 충분한 잠재력이 있는가?
셋 다 아니다. 요컨대 긍정적인 선순환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고 과거의 추억을 다시 팔아먹는 재탕 컨텐츠만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정겨운 브루드워와 선수들을 다시 보는 것은, 아직 브루드워의 향수를 짙게 느끼는 일부 수요층을 만족시켜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보는 재미는 굳이 '리그의 부활'이라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단발성 대회라든가 이벤트 매치 형식으로도 충분하다.
현 스베누 스타1 리그에 참가했던 선수 중 일부는 SSB 리그 참가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도 개인 방송에서 유료 아이템을 위해 욕설이나 자극적인 언행을 일삼기도 하고, 때로는 인성 문제가 이슈가 될 정도로 행동하는 등, 눈앞의 돈 때문에 전 프로로서의 자긍심을 모두 팔아버린 듯한 행동으로 프로게이머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은퇴한 게이머 중에는 임요환처럼 끝까지 e스포츠 판에 열과 성을 다한 뒤 다른 분야로 전향하거나, 홍진호처럼 예능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스타로 떠오르거나, 최연성, 송병구처럼 자신의 친정 팀을 위해 헌신하거나 공무원이 되는 등 모범적인 사례도 있다. 그러나 부적절한 언행, 프로게이머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이 계속 방송에 비치며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빈도가 많아질수록 이런 모범적인 사례가 조명 받기는 힘들어진다.
브루드워 대회가 열리는 것에 대해 '인기론'을 들고 나올 수도 있다. 스타2가 브루드워만큼 성공하지 못했으니 인기 없는 스타2 대신 브루드워 대회가 열리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논리대로라면 한국에서 LOL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게임의 대회는 전부 없어져야 맞다. PC방 점유율로 따지면 2위부터 그 아래로 모든 게임을 합쳐도 LOL의 점유율을 이기지 못하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LOL만 남고 모든 대회가 사라지면 이걸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까.
e스포츠 판에 다른 어떤 긍정적인 변화도 가져오지 않는, 단지 향수를 달래주기 위한 추억팔이용 대회 대신, 종종 한 번씩 단발성 이벤트전 개념으로 인기 많던 선수들을 초청해 짧은 온라인 매치를 여는 정도로만 해도 된다.
현재의 브루드워 대회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에 못지않은 사람들이 프로게이머 이미지 실추, 과거에 비해 떨어지는 경기력 때문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과거의 추억을 위한답시고 꺼낸 리그가 오히려 추억을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항상 스스로가 e스포츠 종주국이니 강국이니 하는 것을 어필하고 있지만 실상은 15년이 넘은 브루드워의 화려했던 기억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고 현재도 LOL을 제외한 다른 종목은 철저히 소외받는 갈라파고스다. 진짜로 e스포츠 종주국이라거나 강국이란 걸 어필하고 싶다면 추억팔이 대회가 아니라 경쟁력은 있지만 국내에서 소외받는 종목에 도움을 주는 것이 낫다. 아니면 끝까지 추억에만 얽매이다가 화려한 옛날을 곱씹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좋게 평가해서 추억의 회상이라고 치자. 그런 추억의 회상도 두 번이나 봤으면 이미 볼 만큼 봤다. 추억을 팔아도 가끔 한 번씩 팔아야 효과가 있지, 매일 팔다가는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는 법이다. 시대의 흐름, 세계적 추세에 발을 맞출 때도 됐다. 한국이 진짜 e스포츠 종주국, 강국이란 평가를 듣고 싶다면 말이다.
아무리 소중한 것, 대단한 것이라 해도 보내야 할 때는 보내줄 줄 알아야 한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았을 때가 가장 아름답고 추억이기에 아름다운 법이다. 수명이 다한 고목에 물을 부을 때가 아니라 아직 피지 못한 새싹에 물을 줄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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