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를 배우면 항상 시대 구분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원시-고대-중세-근대-현대


이중에서 고대-중세-근대를 중심으로 시대 구분을 하는 것을, 삼시대 구분법이라고도 하는데, 이걸 기안한 사람은 다름 아닌…





(마르크스-이 모든 문제의 원흉)


마르크스는 생산력과 생산 수단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렇게 시대를 구분했습니다.


고대: 노예제 생산 방식

중세: 농노적 생산 방식

근대: 자본가적 생산 방식


이렇게요.




하지만 마르크스의 위엄에 대해서는 지면이 부족한 관계로 차후에 알아보도록 하고,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이 시대 구분 문제가 고려사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를 봅시다. 고려는 어느 시대에 들어가 있나요? 바로 중세입니다. 통일 신라 포함 이전은 고대이고, 흔히 개화기 이후를 근대라고 말하지요. 여기서 눈치있는 사람은 한 가지 질문을 더 할 수 있습니다.


"근세가 왜 없지?"




맞습니다. 우리 교과서에서는 한국사의 시대 구분을 고대-중세-근세-근대 이렇게 배우지요. 그리고 그 근세가 바로 조선이구요.


사실 근세라는 개념은 한국사에서 조선을 위해서 임의로 만들어낸 개념입니다. 의아하신 분들은 당장 근세를 영어로 어떻게 쓰는지 한번 알아보세요. 'Early Modern Period' 즉 근세는 근대의 초기 과정(?) 정도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한국은 이걸 조선사를 위해 강제로 쓰고 있지요.


그럼 왜 억지(?)로 근세라는 용어를 한국은 쓰고 있을까요? 조선이 근대 국가는 확실히 아닌데, 중세 국가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질문: "조선이 근대 국가가 아닌 건 확실히 알겠는데, 그럼 조선이 중세면 뭐가 문제인데?"

=> 조선이 중세 국가가 되면 한국사에서 중세의 기간이 약 900~1000년 정도나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다른 자잘한 문제도 몇 가지 있지만, 저 긴 기간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중세 시대의 기간이 긴 게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되냐구요? 네, 문제가 됩니다. 최소한 20세기 한국사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역사는 늘 진보하는 것이고, 한국사에서 중세가 천년 가까이 지속했다는 것은 일종의 제자리걸음 상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은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켜주었다는 주장, 즉 식민사학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으니까요.


굉장히 짧고 간단하게 쓰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이것이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슬슬 극복되어 가고 있지만요.


아무튼, 상황이 이 지경이 되어 버리자 학자들은 대충 타협을 시도했습니다.


아, 잘은 모르겠고,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생산력과 생산 수단, 그리고 그 생산물을 분배하는 공동체(정부)의 능력, 즉 중앙 집권화 정도를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하자고!

고대는 노예적 생산 방식에 중앙 집권력이 약하고!

중세는 농노적 생산 방식에 중앙 집권력이 중간이고!

근대는 자본가적 생산 방식에 중앙 집권력이 강하다!


이렇게 정리합니다. 우리가 국사 교과서에서 수도 없이 '중앙 집권화'라는 단어를 마주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국사는 다시 평화로워지는 듯했습니다.




(신라촌락문서)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일본에서 이런 물건이 튀어나옵니다. 1933년 10월 일본 도다이지에서 발견된 이 문서는 통일 신라 시대의 서원경 지방 4개 마을의 장부 기록인데, 내용을 간추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구를 나이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누고, 가구의 경제력(인구)을 기준으로 9등급으로 나누어지고, 3년마다 인구 조사를 해서 항상 목록을 최신화하고, 노비 숫자, 소와 말의 숫자, 뽕나무 잣나무 숫자는 한 자리수까지 전부 파악하고, 토지는 몽땅 다 그 주인이 확실하게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신라는 일반 백성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고 세금을 걷었습니다.]


매우 간략하게 압축해서 설명했지만, 저건 진짜 어마어마한 겁니다. 중앙에서 일개 촌락의 말과 소의 숫자뿐 아니라 나무 개수까지 알고 있다니요? 조선도 저 정도까지 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이 촌락 문서 때문에 중앙 집권력이 첨부된 위의 공식이 완전히 틀어집니다.


삼국 시대 - 중앙 집권력 최하(고대)

통일 신라 - 중앙 집권력 최상(근세?)

고려 - 중앙 집권력 중간(중세?)

조선 - 중앙 집권력 상(근세?)


그러니까 한국은 고대에서 근세로 한 번에 변신한 다음, 중세로 퇴보하고, 다시 근세가 된 세계사적으로 유일한 국가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 때문에 다시 시대 구분을 둘러싸고 콜로세움이 열리게 됩니다. 이제 문제의 핵심은 고대 국가와 중세 국가의 차이, 통일 신라와 고려의 차이가 무엇이냐가 됩니다. 이 구분이 되느냐 마냐에 따라 한국사의 시대 구분이 완전히 틀어질 수도, 새롭게 짜일 수도 있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중에서도 통일 신라와 비교하면 그나마 사료가 많은 고려사가 문제의 핵심으로 새롭게 부상합니다.



출처 : 네이버 부흥 카페 '려운'